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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와 문화] 고대 동아 지중해 네트워크의 허브, 탐라(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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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해·동중국해·일본열도 연결하는 동아지중해 여러 허브 가운데 하나
바다를 삶의 통로 활용 외부와 교류 선택 아니라 생존 조건

제주 거점 항로도
제주 거점 항로도

제주도 출신인 현기영이 쓴 '변방에 우짖는 새'라는 작품이 있다. 청소년기의 나에게 제주도를 비극의 섬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정말 제주도는 고립된 망망대해 위의 고립된 유배지인가? 농토가 없어서 여인들이 물질로만 먹고사는 가난한 섬인가? 최근에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각되지만, 그 이전의 제주도는 슬픔과 한, 고립. 이러한 말만 떠오르는 버림받은 섬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제주를 한반도의 남쪽 끝에 놓인 변방으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성리학자들의 철저히 육지 중심의 역사관이 만든 시각이다. 바다의 마음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제주도는 결코 주변부가 아니다. 고대 역사 속의 제주도, 곧 탐모라국(耽牟羅國), 섭라(涉羅), 탁라(乇羅), 담모라(耽牟羅), 담라(憺羅)로도 불린 탐라(耽羅)는 황해·남해·동중국해·일본열도를 연결하는 동아지중해의 여러 허브 가운데 하나로서 다양한 항로와 사람들, 문화와 사상이 교차하던 독특한 교차로(IC)였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라는 특성상 농경에 적합한 토지가 제한적이었으므로 자체 생산만으로 인구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바다를 삶의 통로로 활용하여 외부와 교류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었다. 다행히 해양활동에는 유리한 해양지리적인 위치였다. 쿠로시오(黑潮)라는 해류가 필리핀 북부에서 시작돼 타이완과 오키나와를 지나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로 흐른다. 이 흐름에 봄과 여름철 남풍 계열의 계절풍이 더해지면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일본열도에서 제주도로 항해가 가능해진다. 동력이 거의 없는 선박조차 자연의 힘만으로 제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테우라는 뗏목배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넓이 대략 1,900평방km에 사발처럼 약 2천m 솟구친 한라산은 100마일 내의 바다에서는 보였다. 항해자들은 한라산을 기준으로 선박의 위치를 측정하고 항해 방향을 잡았다. 일본 서쪽 끝인 고또(五島)열도에서도 한라산이 보였다는 기록은 제주가 동아시아 항해 시스템에서 얼마나 중요한 기준점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태풍과 폭풍을 피하는 피항지 역할도 수행했고, 대평리의 당포항은 지금도 중국 어선들이 피항하는 항구이다. 또한 장거리 항해를 하던 선박들은 제주에서 물과 식량을 보급받고 선박을 수리하며 바람을 기다렸다. 그래서 제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항로는 단순한 직선항로가 아니라 방사상으로 뻗어 나가는 복합 해양 네트워크였다. 제주도는 이 해양 네트워크의 교차로(ic)이었다.

◆제주도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제주도에서는 어음리의 빌레못 동굴에서 65,000년(?)~35,000년 사이의 석기들이 발견됐다. 천지연(天地淵) 근처의 바위그늘 집터에서는 25,000~15,000년 전의 석기들이 발견됐다. 가까운 육지인 전남 해안 지방까지는 추자군도를 중간에 두고 100㎞ 이상의 거리이다. 하지만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연륙되었으므로 걸어서 이주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말기 구석기 또는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산리 토기들의 주인공들은 바다가 생긴 이후라서 해로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연해주의 '자이싸노브까 문화'의 빗살무늬 토기, 번개무늬 토기 등은 한반도의 신석기 토기와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제주도와 연결된다. 흑룡강 하구와 연해주 해안, 동해안과 제주도에 이르는 지역은 토기를 매로 삼은 공통의 문화권이었다. 신석기 시대 후기의 토기인 변형 빗살무늬토기도 제주도의 각지에서 발견된다. 북촌리 바위그늘 집자리 유적은 대표적인 유적이다. 상모리 패총과 곽지리 패총, 또 송국리형 주거지와 점토띠무늬 토기 등을 보면 청동기시대에도 한반도 남부 및 주변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역사시대의 탐라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제주도는 한반도 여러 지역은 물론이고 중국 지역과도 교류가 있었다. 사마천이 쓴 『사기』의 진시황 본기 등에는 진시황이 파견한 서복(서시)과 삼천의 동남동녀들이 기원전 219년에 불로초를 찾아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도에는 정방폭포 등에 그 일행이 닿았다는 설화가 있는데 당시의 항해 수준과 항로 구조를 고려하면 상륙했거나 경유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산지항에서는 전한 시대의 화폐인 오수전과 왕망 시기의 화폐들이 발견되었다.

제주도 산지항 출토 중국계 오수전 대천 오십, 화포 등 화폐들.
'서시과차(西市過此)'라는 글자가 새겨졌다고 알려진 정방폭포.

3세기 전반 경의 상황을 기록한 『삼국지』나 『후한서』에는 마한 서쪽 바다의 큰 섬인 주호(州胡)의 존재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은 "키가 작고 말이 한인(韓人)과 같지 않으며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중(韓中)에서 매매한다" 탐라인들이 적극적인 해상 무역인이었으며, 3세기 이전부터 국제 해양무역망 속에 편입되었음을 알려준다. 동아지중해에서는 중국과 왜, 삼한을 연결하는 대부분의 항로가 제주 해역을 지나갔고, 제주는 항법상 중요한 기준점이었다.

장보고호
제주도 산지항 출토 중국계 오수전 대천 오십, 화포 등 화폐들.

◆삼국 시대 탐라의 해양활동
탐라라는 이름이 등장한 후에는 백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4세기 중반에 근초고왕이 마한을 복속시킨 후로 일본열도로 진출할 때 제주도는 전략적인 중간기지로 활용했을 것이다. 탐라는 문주왕 때부터 공물을 바쳤는데 이는 복속이라기보다는 외교적인 제휴에 가까웠다.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을 잃고 웅진으로 천도한 직후였고, 왕권조차 안정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탐라는 독자성을 유지한 채 백제와 해양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협력 관계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백제 선단은 전라도와 남해 서안에서 출발해 제주도 해역을 활용하면서 대마도와 고토열도, 큐슈로 향했을 것이다. 남해 동부는 가야계 세력의 영향력이 강했으므로 외해 항로인 제주를 경유하면서 해류와 계절풍을 이용해 일본열도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북사』, 『수서』, 『삼국사기』의 백제전에는 589년에 수나라의 전선이 탐모라국(耽毛羅國, 제주도로 추정)에 표착했는데, 백제의 위덕왕이 후대하여 귀환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는 이를 계기로 수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고구려를 견제할 수 있었다. 또한 609년에는 80여 명이나 되는 백제 사신단을 실은 배가 일본 큐슈의 구마모토(熊本) 해안에 표류한 적이 있었다. 양자강 유역에 있는 수의 오(吳) 지방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하는 길에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 땅에 도착했다. 아마도 한반도의 남서해안과 제주도 사이를 통과했거나 또는 제주도 남해권을 정처없이 표류했을 것이다. 이어 663년에 벌어진 백강(백촌강) 전투는 탐라의 해양적인 위상을 잘 보여준다. 무려 70년 동안 지속된 '동아지중해 국제대전'에서 백제는 신라·당나라 연합군에게 사비성이 함락당한 채 3년 동안 복국전쟁을 벌였다. 최후의 결전으로 백강 전투가 벌어졌는데, 『구당서』 기록을 보면 백제·왜·탐라의 동맹수군과 당·신라의 연합수군이 충돌한 동아시아 최초의 다국적 국제 해전이었다. 이 시대에 탐라는 뛰어난 항해능력을 바탕으로 중립적이거나 주변국이 아니라 국제해양전 체계 속에 포함된 주요 세력이었다.(윤명철, 『한국해양사』)

탐라는 고구려와도 연결되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졌지만 황해 항로를 통해서 충분히 연결이 가능한 거리였다. 일부에서는 영주지에 기록된 탐라를 건국한 세 명의 신령스러운 시조인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가운데 고을나를 고구려 고(高)씨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삼국사기』와 북위의 역사를 기록한 『위서』에는 고구려의 사신이 "가옥(珂玉, 마노 또는 진주)은 '섭라(涉羅)'에서 난다. ~ 그런데 백제에 병합됐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이는 탐라산 특산물이 고구려까지 유입되었고 중계무역품이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에 황해를 횡단, 종단하며 남북조와 무역을 했고, 남방 물산을 확보하는 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신라 및 일본과 교류한 탐라국

탐라와 신라는 비교적 늦게서야 관계를 맺었다. 신라는 초기에는 동해 남부의 내륙도시 국가였고, 해양활동 능력도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6세기 초부터 우산국 복속을 계기로 해양력을 강화시켰고,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이 황룡사 9층탑을 세울 때 경계해야 할 '9한' 가운데 하나로 포함됐다. 탐라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이후 신라는 삼국통일전쟁의 과정은 물론이고, 신질서 속의 국제 외교망에서 탐라를 중요한 해양세력으로 인식하였다. 특히 장보고 시대를 전후하여 제주도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재당 신라인과 국제상인들은 제주 해역을 경유해 중국과 일본열도를 오갔다. 제주도 당포항의 법화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장보고가 산동 적산에 세운 법화원과 마찬가지로 신앙·무역·보급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해양네트워크의 거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2003년에 뗏목 장보고호를 타고 탐험할 때 절강성을 출항해 북상하다가 산동성에서 서해를 횡단했고. 이어 완도(청해진)을 경유하고, 촤종적으로 제주도의 대포항을 출항해 일본열도로 향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태풍과 파랑을 맞아 항로를 잃어버리고 13일 동안 표류했고, 결국은 큐슈의 서부인 고토열도에 닿았다. 백제선이나 일본이 파견한 견당선과 비슷한 경로를 밟은 것이다.

제주도 경유 항로도
장보고호

일본 견당사들이 이 시대에 사용한 4개의 항로 가운데 '북로'와 '남로'는 제주 해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반도의 서해안을 북상하는 북로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적대국가인 신라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따라서 일본은 위험 부담이 큰 큐슈를 출발해 오도열도에 도착한 뒤 제주도를 물표로 삼아 동중국해를 횡단하는 남로를 자주 택했다. 맑은 날에는 고토열도의 북부에서 한라산이 보이므로 항해의 방향을 잡아주는 필수적인 기준점이었다. 실제로 견당사선들은 표류와 조난을 겪다가 제주도에 도착하기도 했다. 778년 당나라에서 귀국하던 일본 사신선의 일부 선원들이 탐라에 표착해 억류되었다.(윤명철, 『장보고 시대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이는 제주가 단순한 지방 섬이 아니라 국제항로의 핵심 공간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제주도 경유 항로도

◆오키나와와 교류한 제주도

우리는 오키나와는 먼 지역이고, 전혀 교류가 없었던 역사와 문화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고 시대에 유구국과 정식 교류나 표류 등으로 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기록들이 많다. 한반도 서남 해안에 남은 해양 남방문화의 흔적들, 해류와 계절풍 등의 해양환경을 고려하면 선사시대부터도 중국의 강남지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지역과 교류권을 이루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특히 제주도는 항해환경으로 보아 기록 이전부터 교류했을 것이다. 『탐라지』에 기록된 뱀(차귀당신)신앙, 귤 재배, 일부 고인돌 양식은 제주도가 오키나와 및 남방문화와 연결됐음을 보여준다. 변방이나 고립된 섬으로 인식된 제주도는 망망대해의 가운데이지만, 동아지중해의 항로 메카니즘과 국제질서의 상황을 고려할 때 고대 한민족의 역사에서 비중이 높은 역할을 했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면서 제주도의 역할과 위상은 더더욱 높아졌다. 수많은 표류현상들이 있었고, 사신단이 교환되었으며, 심지어는 삼별초의 잔여세력이 유구국에 상륙하여 정착했다는 설도 제기된다.

21세기는 해양의 세기이며, 해양력이 국가의 흥망성쇠에 큰 작동을 한다. 지금 본섬 곁인 마라도에서 149km 떨어진 곳에 '이어도'가 있다. 제주도 어민들의 풍요로운 어장이었으며, 항법상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최근에 이 곳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군사적인 활동까지 하는 중이다.(윤명철, 『동아시아의 영토분쟁과 역사갈등의 연구』) 그런데도 제주도에 가보면 중국인들의 흔적과 역량이 점점 강화되는 것을 목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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