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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하영석] 글로벌 통상질서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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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하영석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장(계명대 명예교수)

호르무즈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망 위기는 원유 가격 급등과 운송차질 등의 충격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켰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위기 자체보다 사태 종료 이후 전개될 통상질서의 구조적 변화다. 최근 '싱가포르 해양주간'에서는 글로벌 해운의 패러다임이 기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서 GSE(지정학적 리스크, 안전성, 효율성)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는 리스크와 안전성 관리가 변화의 기본 상수가 된 것을 시사한다.

현재 글로벌 경제는 다중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광범위한 관세 인상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중 패권 경쟁, 지정학적 갈등이 맞물리면서 기존 경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통상질서 역시 효율성 중심에서 경제안보 중심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 블록화, 공급망 재편, 환경 규제, 데이터 경쟁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경쟁은 통상질서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반도체와 핵심 광물은 산업자산을 넘어 경제안보 자산이 되었고, 이를 둘러싼 경쟁은 경제블록화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법(CHIPS)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반도체와 에너지의 자국 중심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 출범한 '팍스 실리카(Pax Silica)'와 2026년 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확대한 '포지(FORGE)'를 통해 기술과 광물 공급망의 통제력을 한층 높이고 있다.

중국은 브릭스(BRICS)를 중심으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이 연대한 BRICS+의 추진을 통해 대안적 통상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 실크로드'와 희토류 중심의 '녹색 광물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통해 자원 지배력을 강화하며, G7 중심의 통상질서 구축에 대응하고 있다.

공급망 운영과 구축 방식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용과 효율성을 중시하던 세계화 시대의 적시생산(JIT) 체계는 위기 대응을 위해 핵심자원을 비축하는 비상재고(JIC)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동시에 공급망을 신뢰할 수 있는 인접지역이나 우방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전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편 전통 선진국들이 포진한 유럽연합(EU)은 환경규제 기반의 통상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제도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에 따라 철강, 알루미늄 등 탄소집약적 품목 수출시 탄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또한 선박의 탄소배출 역시 배출권거래제도(ETS)와 해상연료규제(FuelEU Maritime)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통상질서 재편의 또 다른 축은 데이터 확보 경쟁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력이 아니라, 양질의 데이터를 누가 확보하고 통제하느냐에 달려있다. 글로벌 물류 공급망의 통제권 또한 항만이나 선박 같은 물리적 인프라를 넘어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국가 주도의 물류 플랫폼인 '로진크(LOGINK)'를 통해 전 세계 주요 항만의 물동량 데이터를 축적하여 왔다. 반면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급망 흐름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FLOW' 프로젝트를 통해 민간주도 개방형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데이터 활용이 폐쇄적인 '로진크'의 사용 중단을 촉구하며 데이터 주도권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통상 질서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공급망 충격에 취약한 한국은 맞춤형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경제안보와 직결된 품목과 일반 품목을 구분하여 비상재고와 적시생산 체제를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공급망'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에너지 및 광물 자원 확보통로를 다변화해야 한다. 이에 더해 국가 통합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여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AI 기반 공급망 구축과 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환경 규제와 공급망 충격에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해 금융, 정보, 물류 인프라를 연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기술·자원과 해상요충지의 안전 확보를 위한 다자간 협력과 국제 공조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질서 속에서 그 흐름을 정확히 읽고,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을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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