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백강의 한국 고대사] 공무도하가는 북경의 조선하를 배경으로 창작된 고조선 가요다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공무도하가, 고조선 당시에 고조선 사람이 직접 지어 부른 가요
일연 저술 '삼국유사' 고조선조보다 훨씬 더 사료적 가치 높아

옛 조선하로 추정되는 지금의 조하, 북경시내를 가로질러 밀운댐으로 유입된다.
옛 조선하로 추정되는 지금의 조하, 북경시내를 가로질러 밀운댐으로 유입된다.

◆한국 최초의 고조선 자료 공무도하가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끝내 그 물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찌할꼬.(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백수 광부의 아내, 「공무도하가」-"

이는 동아출판사에서 발행한 『고등국어 고전문학』 맨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고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을 통해서 이 노래가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배경 설화를 덧붙이고 있다.

공무도하가는 일명 공후인(箜篌引)이라고도 하는데 한국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모두 실려 있다. 우리는 그동안 공무도하가를 한국 최초의 가요라고만 인식하고 고조선 사료로서의 높은 가치엔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당시에 고조선 사람이 직접 지어 부른 가요라는 점에서 고려 때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 고조선조보다도 훨씬 더 사료적 가치가 높은 한국 최초의 고조선 자료이다.

공무도하가는 고조선의 나루터인 조선진(朝鮮津)을 배경으로 창작된 고조선 민요이므로 조선진을 추적하여 그 위치가 확실히 밝혀진다면 대동강 조선설은 설 자리를 잃고 한국사의 혁명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공무도하가의 고조선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북송때 곽무천이 편찬한 악부시집, 공무도하가는 한악부 즉 한나라시대 민간음악 부문에 실려 있다,
북송때 곽무천이 편찬한 악부시집, 공무도하가는 한악부 즉 한나라시대 민간음악 부문에 실려 있다,

◆공무도하가의 조선진(朝鮮津)을 대동강 구두진(狗頭津)으로 본 이병도의 견해

이병도는 『한국고대사연구, 1979』 낙랑군고에서 공무도하가와 관련하여 그의 견해를 장황하게 피력했다. 이병도의 견해는 반도사학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좀 길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현과 관련하여 하나의 유명한 사화史話를 소개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조선진졸(朝鮮津卒)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처인 여옥의 공후인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조선진은 아마 조선 현치(縣治)의 유지(遺址)인 토성리 북쪽에서 대동강을 건너가는 도진(渡津)인 지금의 구두진(狗頭津)〈승람(勝覽)의 남포(南浦), 일운(一云) 당포(唐浦)?〉이 아닌가 생각되며, 곽리자고는 이 도진의 수부(水夫)였던 것이다. 곽리는 자고의 씨성(氏姓)인지 혹은 그의 거주 동명(洞名)인지 미상하나 그것이 연달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씨성인 것 같다. 어떻든 그가 조선현의 토착 원주민인 것은 의심 없다. 그 사화가 한악부(漢樂府)〈상화곡(相和曲), 공후인조(箜篌引條)〉에 실려 있는 만큼, 한대(漢代)의 이야기인 것은 재언(再言)을 요하지 않는다. 이것이 역시 진대(晉代)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도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전자에서의 인용일 것이다. 양서(兩書)에 의해서 그 사화의 전말을 말하면 아래와 같다. 공후인은 조선진졸 곽리자고의 처인 여옥의 소작이다.······"

이병도는 지금 북한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북단이 낙랑군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대동강 남쪽 연안인 대동면 토성리 일대를 낙랑군 조선현의 소재지로 파악한 이병도는 공후인에 등장하는 조선진을 토성리 북쪽에서 대동강을 건너가는 나루터인 구두진(狗頭津)으로 추정하였다.

한자 '구두(狗頭)'는 개의 머리란 뜻으로 아마도 그곳 지형이 개의 머리와 유사하게 생겨서 붙여진 지명인 듯하다. 그런데 조선과 구두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구두진을 왜 조선진으로 추정하는가에 대한 단 한마디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동강 구두진을 조선진으로 비정한 것은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사기』에 "구두진에 이르러 대동강을 건넌다.(至狗頭津 渡大同江)"라는 기록이 보인다. 구두진이 대동강의 대표적인 나루터이므로 대동강을 고조선의 중심지역으로 인식한 이병도는 조선진을 구두진으로 비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두진이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것을 본다면 구두진은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 시대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곽리자고가 만일 구두진졸(狗頭津卒)이라면 최표의 『고금주(古今注)』를 비롯한 중국 문헌에서 구두진졸이라고 말하지 왜 굳이 조선진졸(朝鮮津卒)이라고 표현했겠는가.

그리고 "공무도하(公无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라는 공무도하가 가사 내용에서 보듯이 강이 아닌 하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대동강은 강이지 하가 아니다. 고대에는 장강(長江), 주강(珠江), 위하(渭河), 황하(黃河), 한수(漢水), 요수(遼水) 등과 같이 강, 하, 수를 구분하여 호칭하였다. 공무도강가라고 하지 않고 공무도하가라고 한 것을 보아도 여기 등장하는 물은 강이 아니라 하(河)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한번 붙여진 지명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구두진은 발음상으로 볼 때 조선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름이다. 이병도가 제2 안, 제3 안으로 거론한 지명인 남포, 당포도 역시 마찬가지다. 구두진, 남포, 당포 이런 명칭들 가운데서는 조선하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한 이병도는 공후인이 한악부(漢樂府)와 진대(晉代) 최표(崔豹)의 『고금주』 두 책(兩書)에 실려 있는 것으로 인식하며 『고금주』가 공후인을 전자 즉 한악부에서 인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공후인은 최초로 동한의 채옹이 쓴 『금조(琴操)』에 수록되었고 서진(西晉)의 최표가 『고금주』에서 이를 인용 보완했으며 북송 때 곽무천(郭茂倩)이 중국의 역대 악부시가를 집대성한 『악부시집(樂府詩集)』을 편찬하면서 공후인을 한악부 상화가사(相和歌辭, 민간음악) 부문에 편입시켰다.

그런데 이병도는 『악부시집』이 북송 때 곽무천에 의해 편찬되어 거기에 한악부 즉 한나라 시대의 민간시가가 수록된 사실을 모르고 한악부를 진(晉)대 『고금주』 이전 한나라 때 편간 된 책 이름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이는 이병도가 그 당시에는 실증사학의 태두로 여겨졌지만 사료의 고증이 훨씬 더 용이해지고 확대된 오늘날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단적인 하나의 사례라고 하겠다.

그런데 광복 후 8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이병도의 2세, 3세들은 이병도 사학에서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으니 지하에서 이병도 선생도 안타까워 할 것이다.

동한시대 채옹이 저술한 금조, 여기에 조선진을 배경으로 창작된 공무도하가가 최초로 수록되었다.
동한시대 채옹이 저술한 금조, 여기에 조선진을 배경으로 창작된 공무도하가가 최초로 수록되었다.

◆공무도하가는 북경의 조선하를 배경으로 창작된 고조선 가요다

지금까지 반도사학과 민족사학을 물론하고 공무도하가에 나오는 조선진이 대동강의 구두진이라는 이병도의 주장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없다.

『다음백과』에는 공후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창작지역, 채록자, 문헌 등이 모두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노래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낙랑군의 조선현이 있었던 대동강 나루나 우리 민족과 관련된 어느 나루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우리 노래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는 이병도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공무도하가는 북한 대동강의 구두진이 아닌 북경의 조선하를 배경으로 창작된 고조선 가요라고 확신한다. 그 근거를 아래에서 자료를 통해 밝힌다.

『무경총요』는 북송 경력(慶曆) 연간(1041~1048)에 국가에서 편찬한 중국 최초의 관찬 군사 저작으로 우리나라 『삼국유사』보다 약 250년 앞서 발간되었다.

『무경총요』에서 북경의 지리를 설명하면서 "동북쪽으로 조선하를 건너고 고북구를 지나서 요나라 수도 중경에 간다."라고 말하여 조선하란 이름이 북경 지역에 등장한다.

조선하에 관한 기록은 송나라에서 직사관(直史館), 사관수찬(史館修撰)을 역임한 역사학자이자 재상을 두 차례나 역임하고 기국공(沂國公)에 봉해진 왕증(王曾, 978~1038)의 『왕기공행정록(王沂公行程錄)』에도 나온다.

『왕기공행정록』은 왕증이 송나라 특사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송나라 변경에서 요나라 수도 중경, 즉 오늘날의 내몽고 영성현(寧城縣)까지의 중간 경유지를 일정표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무경총요』보다 앞서 쓰여진 책인데 여기에도 왕증이 조선하를 지나서 중경에 도착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명, 청 이후 북경 지역에서 조선하가 사라졌지만 적어도 송나라 때까지는 북경에 조선하란 이름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공무도하가의 조선진졸 이야기는 최초로 『금조(琴操)』라는 책에 실려 있는데 『금조』의 저자는 거문고에 조예가 깊었던 동한시대 채옹(蔡邕)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조선진은 동한 이후의 조선진이 될 수 없다.

공무도하가의 창작 배경이 된 조선진은 당연히 한나라 시대 조선하 나루터를 지칭한 것이고 이는 송나라 때뿐 아니라 한나라 시대에도 조선하가 중국에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한나라 시대의 조선하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역사상에 한반도나 만주에는 조선하란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산해경』에서 "고조선은 발해 북쪽 연산 남쪽에 있다.(海北山南)"고 말하였고 『무경총요』에서는 "송나라 때 조선하가 지금 북경 북쪽에 있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북경 북쪽에 있었던 송나라 시대 조선하와 다른 한나라 시대의 조선하가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경총요』, 『왕기공행정록』을 통해서 송나라 시대에 지금 북경에 조선하가 있었다는 사실이 문헌적으로 뒷받침되고 동한시대 채옹의 『금조』에 실린 공무도하가의 조선진졸 이야기는 송나라 시대의 조선하가 한나라 시대에도 조선하로 호칭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고 하겠다.

대동강은 역사상에서 조선하로 불려진 일이 없는데 대동강 구두진이 어떻게 조선진이 될 수 있겠는가. 공무도하가는 북경의 조선하 나루터를 배경으로 쓰여진 고조선의 민요가 확실하다.

◆교과서 개정, 공무도하가 창작 배경 북경 조선하임을 밝혀야

북경 북쪽에 있던 고대의 조선하는 지금 북경시를 가로질러 밀운구 일대를 경유하는 조하(潮河)로 고증된다. 북경에 조선하란 이름으로 불린 고조선의 강이 송나라 때까지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수천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필자를 통해서 최초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 이전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역대 어느 문헌에서도 북경의 조선하를 언급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이병도가 북한의 대동강 유역을 낙랑군 조선현으로 착각하고 대동강 구두진을 조선진으로 비정한 것은 어찌보면 크게 나무랄 일이 못 된다. 또 리지린이나 윤내현이 공후인을 설명하면서 공후인의 창작 배경이 된 조선진의 위치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필자가 북경의 조선하를 발견하여 북경이 고조선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저서를 통해 세상에 공개한지 이미 15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동강 유역 고조선 설을 고집하고 조선진이 구두진이란 주장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공무도하가는 한국의 중, 고등학교 국어, 문학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수록된 작품인데 그동안 학생들에게 창작 무대인 조선진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이제는 북경 조선하의 존재가 확인된 이상 교과서를 개정하여 조선진은 북경 조선하 나루터였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한국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반도민족이 아닌 대륙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해야 한다.

그리고 공무도하가의 조선진이 북한 대동강 구두진이 아닌 북경 조선하 나루터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망언을 하고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대학교재에 실어 가르치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너뜨리는데도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四庫全書/子部/兵家類/武經總要/前集/卷十六下/北番地理

 燕京州軍十二

中原舊地 幽州 古冀北之地 舜置幽州 東有朝鮮遼東 北有樓煩白檀 西有雲中九原 南有滹沱易州 唐置范陽節度 臨制奚契丹 理幽州 自石晉割賂戎主 建為南京 又改燕京 東至符家口 三百九十里 正東㣲北 至松亭關 四百五十里 西至中山口百里 正西微北 至居庸關 一百一十里 東北至中京 出北門 過古長城 至望京四十里 又過温餘河 大厦陂 五十里至順州 東北過白璵河 七十里 至檀州 自此漸入山 五十里 至金溝淀 入山屈曲 無復里堠 過朝鮮河 九十里 北至古河口 兩傍峻崖 有路僅容車軌 八十里 至新館 過鵰窠嶺 四十里 至卧如來館 又七十里 至栁河館 過松亭嶺 七十里 至打造部落 又東南行五十里 至牛山館 八十里 至鹿兒峽館 又九十里 至鐵漿館 自北塹山 七十里 至富谷館 又八十里 至通天館 又二十里 至中京 南至雄州 出南門 渡盧孤河 六十里 至良鄉縣 又過琉璃河 范水 涿水 至涿州 共十里 又七十里 至新城縣 又四十里 至白溝河 渡河 至雄州

무경총요에서 북경의 지리를 설명하는 내용 가운데 등장하는 조선하 부분, 무경총요는 사고전서(四庫全書) 자부 병가류에 수록되어 있다.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외부감사를 허용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며, 선거 기간 동안 선관위 직원들의 휴가 ...
방한 중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7일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와 함께 생맥...
경북대학교는 대구시 상하이사무소와 협력하여 중국 상하이에 해외 우수 유학생 유치 거점센터를 설치하고 글로벌 인재 확보를 위한 활동에 나선다....
우크라이나 수사당국은 러시아에 포섭돼 군인을 독살한 혐의로 17세 여성을 체포했으며, 이 여성이 지난 3일 술을 마신 군인이 다음 날 약물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