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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의 연극리뷰] 모두예술극장 <메커니즘> 몸과 사물의 관계, 퍼포머 크리스틴의 몸의 방식, "84세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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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영국의 전직 물리치료사인 84세 퍼포머 크리스틴 타인의 공연인 모두예술극장의 <메커니즘(These Mechanisms)> 이야기다. 작품은 클래식한 드라마로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이라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사건도 없고, 갈등도 없다. 극중인물이 유도하는 감동 서사도 없다. 극중인물로 가공되지 않는 천연 조미료라고 할까. 허구로 무대화되는 공간은 연기화를 통한 극중인물, 기술적 장치, 서사, 음악과 극적인 요소들이 필수 요소다. 갈등과 사건들이 풍부해질수록 극의 몰입감은 높아진다. 그러나 라이브 아트와 신체를 중심으로 공간에서 활용되는 퍼포먼스는 서사 구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브제와 이미지, 사물과 공간, 몸과 환경이 맺는 관계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자 경험으로 감각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미술관에서 설치미술이나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특정한 이미지와 형태, 선과 빛만으로도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를 읽어내고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모두예술극장의 <메커니즘> 이야기다.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 몸과 사물, 공간이 만들어 내는 현존의 감각

오늘날의 퍼포먼스는 인물과 사건, 서사 구조를 통해서만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브제와 몸, 사물과 공간이 맺는 관계,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움직임과 감각 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포스트 드라마(Postdramatic Theatre)는 희곡을 신봉하지 않는다. 텍스트보다 이미지와 신체, 공간과 사물, 그리고 관객의 경험을 통해 의미와 관객의 사유가 생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허구적 형식으로 채워진 적당한 구성과 안전한 갈등 구조, 사건만으로 전개되는 극적인 구조로 감정이 동요되었다면, 지구상의 사물과 관계, 공간과 환경, 구조와 설치 사이에서 퍼포머의 현존적 관계와 적당한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간 오감의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의 형식은 다르지만, 유형은 같다. 모두예술극장 <메커니즘>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공연에서 중요한 것은 '나'가 '너'라는 인물로 전환되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몸과 사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퍼포머의 수행성, 시간과 관계, 사물과 공간, 환경과 극장, 오브제와 퍼포머 등이 만들어 내는 현존의 감각에 관객은 충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CCTV 화면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특정한 상황을 오래 바라보는 경험일 수도 있고, 한곳에 몰입한 노동자의 반복되는 행위를 지켜보는 일일 수도 있다.

노포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노파의 하루를 관찰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우리가 느끼는 행위의 관점들이 다른 것이다. "그것이 왜 공연예술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동시대 관객들은 특정한 이야기나 사건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여전히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 중심 드라마는 유효하지만, 모든 공연이 서사를 통해서만 의미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관객들이 미술관에서 설치미술이나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생각해 봐도 좋다. 특정한 이미지와 형태, 선과 빛만으로도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를 읽어내고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 드라마(Postdramatic Theatre) 이후의 공연예술은 오브제와 몸, 사물과 공간, 이미지와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관계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되고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퍼포먼스에도 보이지 않는 규칙은 존재한다. 규칙은 서사처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몸과 사물의 관계 속에서 작동하며 공연의 형식을 만들어 낸다. 다만 극적인 순간보다 더 극적일 수 있는 일상의 순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커니즘>은 퍼포머 크리스틴을 통해 몸과 사물, 시간과 공간의 메커니즘 관계를 통해 만들어 내는 과정을 관찰하게 하는 공연이다. 이러한 형식의 퍼포먼스는 영국에서 발전해 온 라이브 아트(Live Art)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라이브 아트는 인물과 사건, 갈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연극 구조보다 지금 이 순간 몸이 존재하는 방식과 지속되는 시간, 관객의 감각적 경험을 중요하게 관찰해 왔다.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현대 퍼포먼스 아트를 대표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작업이 침묵과 시선, 그리고 신체의 현존 자체를 예술적 경험으로 전환한 작업이라면, <메커니즘>은 몸과 사물의 관계를 통해 현존의 감각을 만들어 낸다. 아브라모비치가 관객과 마주 앉은 몸의 시간을 드러냈다면, 크리스틴은 사다리와 물통, 나무판자 사이를 오가며 몸과 사물이 함께 만들어 내는 시간을 수행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보다 몸이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몸과 사물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의 과정과 그 안에서 발화되는 의미들이다.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 84세 크리스틴의 몸,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

<메커니즘>은 물통과 사다리, 작업대 소품도 몸과 함께 수행을 만들어 내는 행위자(actor)로 기능한다. 공간에는 84세 퍼포머 크리스틴과 보조자 한 명 정도가 등장한다. 무대 위에는 물통 몇 개와 사다리, 나무판자, 알루미늄 작업대로 보이는 생활 오브제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특별한 서사도, 화려한 무대장치도 없고 크리스틴의 경험담도 없다. 영상이 보인다. 마치 일상 브이로그처럼 방 안에서 크리스틴이 간단한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고, 조깅하는 듯 걷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숨을 쉬고, 호흡하며 손뼉을 치기도 하고, 좌우로 몸을 비트는 스트레칭과 그의 일상 시간이다. 마치 옆집에 사는 한 할머니의 일상적인 루틴을 바라보는 것처럼. 영상으로 보이는 크리스틴은 노화되어 가는 몸이라기보다 심장박동과 호흡, 소리, 표정, 걸음걸이가 달라져 가는 몸과 일상을 보여준다. 극적인 변화도 없다. 크리스틴이 서서히 달라지는 몸의 변화에 주목한다.

크리스틴은 특정 인물을 연기하지 않는다. 자기 몸을 가지고 지금 여기에서 움직이고 수행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메커니즘>은 노년의 몸을 재현하는 공연이라기보다 몸이 공간과 사물, 시간과 만나면서 만들어 내는 관계의 과정을 보여주는 수행적(performance) 작업에 가깝다. 관객은 공연을 이해한다기보다 몸과 사물이 만들어 내는 낯선 감각을 따라가게 된다. 이어 화면은 한적한 호숫가 풍경으로 전환된다. 빈 물통 몇 개와 판자로 만든 작은 뗏목 위에서 크리스틴은 프라이팬으로 노를 저으며 호수 중앙쯤으로 보이는 작은 숲에서 다시 운동을 이어간다. 마치 마을에서 열리는 실버댄스 경연대회를 준비하는 것처럼 양팔을 좌우로 길게 벌리며 몸을 움직인다. 이게 다다. 이어 영상 속 크리스틴의 일상성은 무대로 전환된다. 사다리와 작업대, 물통, 나무판자 사이에서 눕고 일어서고 이동한다. 사물과 크리스틴의 관계를 통해 몸과 움직임은 계속 달라진다. 구조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몸의 균형을 잡고, 기대고, 이동하고, 손을 뻗고, 발의 스텝과 84세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스트레칭을 보여주는 호숫가에서 일상적 움직임들이다. <메커니즘>은 이러한 움직임의 반복 속에서 나이가 들며 달라지는 몸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크리스틴의 몸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은 크리스틴의 변화가 놀라운 시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 사다리 작업대를 눕혀 놓고 긴 막대로 좌우를 연결해 시소처럼 만든다. 오른쪽에는 물로 가득 찬 물통 몇 개가 중력을 유지하게 하고, 반대편에는 크리스틴이 누워 균형을 잡아간다. 누워 있는 팔십 대 크리스틴의 시선, 호흡, 소리, 크리스틴의 일상인 듯한 시간을 그대로 몇 분에 걸쳐 공간은 서서히 암전된다. 균형의 각도, 몸, 무게와 시소와의 접점, 몸과 사물의 메커니즘 관계를 통해 만들어 낸 84세 크리스틴의 몸에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루틴한 일상, 손뼉 치고 걷고, 춤동작의 스트레칭, 하나둘 하면 움직이는 84세 크리스틴의 몸의 극복기쯤 되어 보이는 시간의 과정이 관계의 메커니즘으로 완성된다.

그렇다. 크리스틴이 몸을 극복하는 과정을 60분에 걸쳐 관찰한 듯한 <메커니즘>은 크리스틴의 몸과 사물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일상적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대 퍼포먼스이며, 라이브 기술(Live Art)로 설명된다. 크리스틴의 팔순 몸 극복기쯤 되는 <메커니즘>은 "아무것도 없잖아."하며 관찰 자체를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고, 노부모의 특별한 일상이나 극적인 노동을 한 시간쯤 관찰하는 것이 더 감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퍼포머로 등장하는 크리스틴의 <메커니즘> 공연의 매력이다. 공연이 끝난 뒤 떠오른 것은 " 84세 나이가 어때서"였다.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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