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해자입니다."
"나는 결백합니다."
두 사람의 말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다. 사건은 오래전에 벌어졌고 물증마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사람의 기억과 말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프로파일러 최규환의 신간 '인터뷰룸'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충청남도경찰청 프로파일러로 활동하며 20년 동안 1천 명이 넘는 범죄자와 피해자를 인터뷰하면서 진술만 남은 사건 속에서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오늘날 과학수사는 CCTV와 휴대전화 기록, 디지털포렌식 기술을 통해 범죄의 흔적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러나 여전히 과학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진 성범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드러난 아동학대, 가족 안에서 은밀하게 반복된 폭력 사건들이다. 물리적 증거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는 결국 사람의 기억과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간의 기억이 생각보다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충격적인 경험은 기억을 파편화하고, 시간은 세부를 흐리게 만든다. 때로는 수치심 때문에 일부 사실을 숨기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말만 남은 사건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저자는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언어에는 꾸며내기 어려운 흔적이 남는다고 말한다.
책은 모두 아홉 개의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항거불능 상태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 직장 내 위력 성추행 사건, 이주 여성 노동자 성폭행 사건, 장기간 누적된 친족 성폭력 사건, 고령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 등이 등장한다. 특히 신혼여행 중 발생한 니코틴 살인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 사례도 함께 다루며 독자를 실제 수사 현장으로 이끈다.
저자는 사건 기록과 인터뷰 내용을 따라가며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말들 속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찾아낸다. 저자는 감정적 호소보다 진술의 구조에 주목 한다. 대신 객관성, 일관성, 통일성, 개연성, 구체성 등 대법원의 신빙성 판단 기준을 토대로 진술을 검증한다. 사건 직후부터 이어진 말의 흐름이 유지되는지, 행동과 진술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저자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맹신하지 않는다. 그는 신고를 망설이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이해하는 동시에, 억울하게 성범죄자로 몰린 사람들의 사례와 양측 모두 사실을 왜곡한 사건도 함께 다룬다. 진술분석의 목적은 편들기가 아니라 사실에 다가가는 데 있음을 강조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범죄를 다룬 책이면서도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심리, 상처 입은 사람이 침묵하는 이유, 기억이 만들어내는 오류와 자기합리화까지. 저자는 인터뷰실 안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진실과 거짓을 완벽하게 가려내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내리는 판단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더욱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더 치열하게 검증하려 한다. KAIST 뇌인지과학과 정재승 교수는 이 책을 "범죄 서사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 오류와 진술의 구조를 탐구하는 자연 실험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책은 사건 해결보다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진실은 기억 속에 고정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 관계와 맥락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프로파일러의 수사 과정은 오늘날 우리가 진실을 판단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1만8천500원,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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