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에서 내신 성적 확보가 유리한 비학군지 일반고를 찾아 시외곽으로 이동하던 이른바 '내신 망명' 전략이 사실상 종말을 고하고 있다. 주요 대학들이 고교별 학력 격차를 반영해 학생부 교과전형에서조차 정성평가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대폭 강화하면서 단순 내신 등급 숫자의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 고교 입시 시장 조사에 따르면 대입 기준 전국 의과대학 모집 인원 3천116명 중 순수 학생부교과전형 선출 비율은 단 9.5%인 298명에 불과한 반면, 지역인재 교과전형은 658명 규모로 대폭 포진해 있다. 대구 수험생이 이 메디컬 라인을 공략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실질적인 관문은 3개 영역 등급 합 4 이내라는 가혹한 수능 최저학력기준이다. 하지만 수성구를 벗어난 일부 일반고들은 변별력 확보를 명분으로 수행평가 반영 비율을 40%에서 최대 60%까지 확대하면서 상위권 학생들의 정시 대비 시간을 심각하게 잠식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실제 대구 달서구 소재 A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B학생은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 한 달 동안 7개 과목에서 동시에 쏟아진 수행평가 보고서 작성과 학술제 발표를 준비하느라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은 손도 대지 못했다. B학생은 학교 분위기에 맞춰 수행평가 완벽주의를 기하다 보니 정작 밤샘 작업으로 생체 리듬이 무너져 평소 1등급을 유지하던 모의고사 국어와 수학 성적이 각각 3등급으로 동반 하락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고교별 교육과정 편성표와 원점수, 평균, 표준편차를 종합 시뮬레이션하여 학교의 학력 수준을 역추적하는 시스템을 도입함에 따라, 학력 저하를 수행평가 폭탄으로 메우려는 비학군지 고교들의 고육책은 도리어 상위권 수험생들의 수능 최저학력기준 미달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교육계 내부에서는 비학군지에서 전교 1등을 하여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서울대 등 명문대 상위 학과에 합격한다는 시나리오를 일종의 환상으로 치부한다. 비교과 스펙을 꼼꼼히 챙겨 내신 1.9등급(9등급)으로 서울대 공과대학에 합격하는 사례는 철저하게 교육과정이 특화된 자사고나 수성구 명문 일반고의 특수한 데이터일 뿐, 면학 분위기가 무너진 시외곽 일반고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다. 지방 수험생이 의치한약수 등 메디컬 계열이나 수도권 주요 대학 합격률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의미한 반장, 부반장 이력이나 동아리 활동 조작에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수학과 과학 등 핵심 교과에서 압도적인 학업 역량을 증명하고 수능 최저학력기준 충족에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정공법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수성구 핵심 학군지를 이탈하면 내신 1등급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통념도 대구 시내 70여 개 일반고 간의 학력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완전히 깨졌다. 비학군지로 가더라도 전교 10등 내외의 상위권 다툼은 수성구 못지않게 치열하며, 도리어 하향 평준화된 교실 분위기 탓에 수능 최저학력기준 충족률은 수성구 대비 급감하는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북구 지역 일반고에 자녀를 진학시킨 학부모 C씨는 "내신 따기 쉽다는 소문만 믿고 보냈는데 지필평가에서 만점을 받아도 수행평가 감점 0.5점 차이로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지는 기형적인 구조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수시 이월 이후 747명까지 확대되는 정시모집 인원 전형은 꿈도 꾸지 못하고 경북대 의대 지역인재 전형 합격선에서도 멀어지는 것 같아 자녀의 고교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전했다.
더욱이 중학교 시절부터 수능 대비를 명분으로 고액 선행 학원에 의존하는 사교육 행태가 고교 입시 실패의 전초전이 된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수능 국어 비문학 영역이나 수학 공통 과목의 본질은 기계적인 문제 풀이 기술이 아니라 교과 텍스트를 스스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원초적인 독해 체력과 수학적 사고력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대구 지역 중학생들이 이러한 기초 학업 역량을 기르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진학하다 보니, 학기 초부터 밀려드는 수행평가 일정과 내신 시험에 매몰되어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4, 5등급대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드는 악순환이 매년 재현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내신 5등급제 전환과 문이과 융합형 수능 체제가 도입되는 향후 대입 개편안의 흐름 속에서 잔꾀를 부려 시외곽 고교를 전전하는 전략은 자멸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오히려 대구 수성구의 K 고등학교나 D 여자고등학교, 혹은 달서구의 Y나 D고등학교처럼 수능형 평가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고 상호 경쟁적인 면학 분위기가 유지되는 전통적 학군지 명문고에 잔류하는 것이 유리하다. 3년간 학교의 엄격한 지필평가 시스템에 적응하며 자연스럽게 수능 최저학력기준과 정시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만이 요동치는 입시 제도 속에서 최종 합격증을 거머쥐는 유일한 승리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윤경민 크라스에듀 대표



































댓글 많은 뉴스
[지역 편중 투자 논란] "반도체 인재·인프라 다 밀리는 호남에 왜? 정부 입김 의구심"
'삼전닉스' 호남行…정부 주도 '투자 갈라치기'에 전국이 들끓다
李 대통령 지지율 44.8%…민주 38.1%·국힘 39.4%
"TK 없인 대한민국 반도체 지도 못 그린다"…地選 당선인 발전결의회
[지역 편중 투자 논란] 행정통합 무산·SMR 부산行…"李정부 'TK 홀대' 현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