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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박진현 '1507' 대표 "대구 양말산업 부활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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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대표가 대구 중구 포정동에 있는
박진현 대표가 대구 중구 포정동에 있는 '1507' 쇼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섬유산업이 절정기였던 1970, 80년대 대구는 양말산업의 메카였다. 서구와 중구 일대에 밀집한 수많은 양말 공장에서 전국 양말의 절반 가량을 생산했다고 한다.

2012년 무렵,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쇠퇴하던 지역 양말산업에 20대 후반 청년이 뛰어들었다. 양말 전문브랜드 '1507'(일오공칠) 박진현(41) 대표다. 처음엔 많아야 하루 10묶음(30켤레) 정도를 판매하던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한 달에 40만 켤레는 거뜬히 판매할 정도로 성장했다.

박 대표는 중국 등에서 제작해 원가를 낮추고 마진을 높일 수도 있지만, 대구에 있는 공장을 통해 생산한다는 원칙을 10년 넘게 고수하고 있다. 20~30년 넘게 대구에서 양말산업에 종사한 이들이 있었기에 자신도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게 박 대표의 바람이다.

지난 2일 '1507' 쇼룸이 있는 대구 중구 포정동 사옥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그는 "시대에 맞게 산업 구조가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만한 기반을 갖췄던 대구의 양말산업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외지 사람들에게 '대구는 양말이 유명하지'란 말을 다시 듣는 것, 딱 그 정도를 이루고 싶다"고 했다.

-어떤 계기로 양말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가 양말 도매업을 하셨기에 어릴 때부터 양말 공장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대구의 양말 공장은 특이하게 가정집과 공장이 결합된 형태가 많았다. 외관은 가정집인데 그 집 지하실이 공장인 거다. 밖에서 보면 공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구조다. 섬유산업의 중심지였던 만큼 예전엔 대구 서구와 중구를 중심으로 이런 공장이 수백 개나 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양말 공장이라고 하면 직조 기계로 양말을 짜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것 말고도 공정이 많다. 트여서 나오는 양말 앞부분을 꿰매는 과정, 완성된 양말을 다림질 하는 과정 등이 필요하다. 그 후 포장 작업을 거쳐 완제품이 탄생한다. 이런 모든 공정이 거의 한 동네에서 이뤄졌을 정도다.

가끔씩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면서 이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주문을 넣을 때 조금씩 더 주문을 넣는 식으로 소량을 제작해 판매한 게 시작이었다. 20대 후반 무렵의 일이다.

대구 중구 포정동 쇼룸에 진열된
대구 중구 포정동 쇼룸에 진열된 '1507' 양말. 김도훈 기자

-가능성을 본 건가.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구 지역 양말 공장을 돌아다녀 보니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유니클로 등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 제품을 많이 제작하더라. 허름한 작은 공장에서 만드는 유명 브랜드 제품이 과연 정품일까 궁금했다. 라이선스 양말 사업을 하는 대형 업체로부터 하청이나 재하청을 받아 제작하는 것이었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지 왜 돈도 안 되는 남의 일만 받아서 하는 건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생 이렇게 일을 받아 했기에 유통에 대해 몰랐던 거다.

이렇게 좋은 실력으로 다른 브랜드에 납품만 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이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양말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 무렵 유니클로 오프라인 매장을 즐겨 찾아 영감을 받곤 했는데, 양말 섹션이 엄청 큰 점이 눈에 띄었다. 양말에 그처럼 큰 구역을 할당한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의미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1507'이다. 아버지의 양말 업체가 있던 주소에서 따왔다. 아버지께 처음 이 일을 배웠던 장소란 의미도 있다.

-자리를 잡기까지 쉽지 많았을 것 같다.

▶사업 초기 유통을 고민하다 문득 온라인 패션 플랫폼 기업인 무신사가 떠올랐다. 혼자 무작정 무신사를 방문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쉽게 입점을 수락해줬다. 다만 당시엔 혼자 일을 하다 보니 무신사 입점 전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제품 사진을 찍고 상세 페이지 등을 만드는 것 말이다. 곧장 학원을 등록해 포토샵·일러스트 등을 배웠는데 3개월쯤 지나니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입점 초기엔 하루에 3~5켤레 묶음 10개 안팎 정도를 팔았다. 월 매출로 치자면 20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이후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2015년 무렵 법인을 만들 때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센터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기업이란 무엇이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위기도 있었다. 2018년 양말 사업과 카페를 병행하려다 6개월 만에 큰 실패를 경험했다. 카페를 폐업하고 함께 일하던 후배마저 떠나게 되면서 혼자 남게 된 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양말사업에 매진했다. 온라인 문의나 댓글 하나하나까지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2년쯤 지나고 보니 연간 20억원 정도를 팔고 있더라. 2020년엔 서대구 공단에 사옥도 마련했다. 현재 연 매출은 100억원쯤 된다. 직원은 17명으로 늘었다.

대구 중구 포정동 쇼룸에 진열된
대구 중구 포정동 쇼룸에 진열된 '1507' 양말. 김도훈 기자

-'양말 품질 보증제' 같은 젊은 감각이 묻어나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신뢰도를 높일 방법을 궁리하다 떠오른 게 '구멍 난 양말을 새 상품으로 교환해주자'는 것이었다. 사실 디자인 완성도가 높은 양말은 애초에 제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고 돌아 내린 결론이 '기본에 충실하자'였다. 한 시즌이 지나면 해지는 양말이 아니라 오래오래 신을 수 있는 품질 좋은 양말 말이다.

'사지 않을 이유가 없는 양말을 만들자'는 생각이다. 품질이면 품질, 서비스면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말이다. 일정금액 이상이 아니라 하나를 구매하더라도 무료 배송을 하고 양말 품질 보증제를 운영하는 것 모두가, '1507'을 몰라서 못 사는 사람은 있어도 알면 굳이 안 살 이유가 없도록 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품 생산 방식이 100% 외주(OEM)이기에 중국·베트남 등에서 만들면 원가를 낮추고 마진을 높일 수 있다. 그럼에도 대구에서 제작한다는 원칙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전성기 수백 개나 되던 대구의 양말 공장 상당수가 사라졌다. 2년 전에도 공장이 문을 닫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사실 중국 등에서 반값 정도로 제작해줄 수 있다는 이메일이 자주 온다. 하지만 좀 더 이익을 내겠다고 중국 업체에 생산을 맡기면 그동안 함께 일하던 공장들은 다 문을 닫아야 한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지역 업체 사장님들께 마음의 빚이 있다. 지역 양말 산업을 이어온 지역 업체를 지켜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대구 제작'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포장 비닐, 라벨 인쇄 등도 마찬가지다.

박진현 대표가 대구 중구 포정동에 있는
박진현 대표가 대구 중구 포정동에 있는 '1507' 쇼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대화에서 깊은 사명감 같은 게 느껴진다.

▶처음엔 가업을 잇겠다거나 대구의 섬유산업에 기여해야겠다는 등에 대한 생각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 일을 하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씩 커진 것 같다.

주위에서 '사양산업'이란 표현을 쓸 때면 가장 마음 아프고 속상하다. 시대에 맞게 산업 구조가 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AI 등을 기반으로 한 첨단산업도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고 그만큼 탄탄한 기반을 갖췄던 대구의 양말산업도 사라지지 않고 오래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지 사람들에게 '대구는 양말이 유명하다' '대구엔 1507이란 양말 브랜드가 있다'는 말을 듣는 것, 딱 그 정도를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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