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없는 정치는 가능한가."
전 세계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 중에 정당 내 계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면, 정치적 가치와 뜻을 같이 하는 결사체가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조직화되는 것이 정치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당내 다수 계파가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고, 국민은 그 후보 가운데 대통령을 선택한다. 독재국가도 경쟁없이 단일 계파의 지도자 한 명을 추대하는 형식을 취한다. 대한민국 정치 역시 예외일 순 없다. 여야 모두 당내 다수 계파가 당권과 공천권을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기 대선과 총선을 준비하는 구조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 한 명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고 반문하며, 정치권에서 계파가 생존과 권력의 기반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늘 "난 계파가 없다"고 강조해 왔지만, 4년 전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조직력을 갖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윤'(親尹)에 밀려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반복되는 계파 정치, 공천이 곧 권력
정치권에서 계파 경쟁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천권이다. 정치인에게 공천은 정치 생명과 직결된다. 현역 의원이라도 공천을 받지 못하면 재당선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이 때문에 총선을 앞둘수록 정치인들은 차기 주류 세력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습을 반복해 왔다. 자칫 비주류에 줄을 서게 되면 정치 생명마저 끊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여야의 내전은 2년 후 있을 총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봐도 무방하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2년 전 총선에서 큰 내홍을 겪은 바 있다. 이른바 '비명횡사'(非命橫死). 친노·친문 세력 중 공천권을 거머쥔 친명계에 비협조적으로 나온 인물들은 여의도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를 혹독하게 겪은 비명계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친청계가 공천권을 행사하기를 바라며, 친명계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여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내 갈등 역시 단순한 노선 다툼이라기보다 2년 뒤 총선을 겨냥한 공천권 경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야당도 계속되는 계파 경쟁
국민의힘 역시 계파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이후 각종 재판을 받고 있지만 친윤파는 여전히 당내 주류 세력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장동혁 당 대표 역시 강성 당원들과 친윤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두 세력의 계파 다툼 속에 6·3 지방선거 정치적 존재감이 커진 오세훈 서울시장(5선)도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당내 친오(親吳)계를 만들기 위해 자주 국회를 찾고 있다.
한동훈 의원은 계파 정치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년 전 당 대표로서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며, 친한(親韓)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현재 원내에서는 15명 안팎의 소수 세력에 머물고 있다. 교섭단체 구성 기준인 20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무소속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후 '보수 재건'의 기치는 내걸고 있지만, 보수 세력 내 다수 계파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정치적 장벽은 높디 높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의원이 뜬금없이 한동훈 의원의 복당을 반대하고 나선 것도 당내 주류가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계파'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전문가들은 계파 자체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일본 자민당,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 등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도 모두 다양한 계파와 정치그룹이 존재하며,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문제는 계파의 존재가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고 운용하는 방식이다.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계파는 민주주의를 활성화하지만, 공천권 독점과 보복성 공천, 줄 세우기 정치로 이어질 경우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정치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계파정치의 사슬을 끊는 해법은 계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천의 투명성을 높이고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있다는 것이 정치학계의 공통된 견해다.계파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계파가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의 도구가 될지, 권력만을 위한 생존 경쟁의 수단이 될지는 정치권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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