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바뀌어도 계파는 살아남았다
한국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정권의 흥망과 함께 계파의 부침도 반복돼 왔다. 권력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정치권의 주도 세력이 바뀌었고, 계파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됐다가 권력 재편기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쳤다. 계파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곧 한국 정치의 권력 지형을 읽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자유당 내 다수파가 정국을 주도했다.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기에는 5·16 군사정변과 12·12 군사반란을 함께한 군 출신 인맥이 국정 운영의 핵심을 차지했다. 특히 전두환 정부에서는 군 내부 사조직인 하나회가 사실상 '개국공신'으로 대접받으며 군과 정권의 핵심 요직을 장악했다.
1990년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3당 합당' 이후에는 민주화 세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계파 정치가 본격화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정치권 양대 축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두 전직 대통령의 자택에서 정치 현안을 논의하는 일이 잦았고, 누가 상도동과 동교동을 자주 드나드느냐가 권력의 중심과 거리를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질 정도였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계파 정치의 명칭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대통령을 뜻하는 '친(親)'자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친노(親盧) 세력이 국정 운영의 중심축으로 떠올랐고,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이후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며 집권 세력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친문(親文)계가 여권의 주류로 부상했다. 청와대와 정부, 당의 주요 요직에 친문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국정 운영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했다.
보수 진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친이(親李)계를 구축했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승리 이후 당내 최대 계파로 성장했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親朴)계가 세를 확장하며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박 전 대통령의 집권 과정에서도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친윤(親尹)계가 당내 최대 세력으로 부상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이재명 대통령 역시 비주류에서 당의 주류로 올라서며 당권과 대권을 동시에 장악했다. 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명(親明)계는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집권 이후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여권 내부에서는 다시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차기 당 대표 선출과 2년 뒤 총선 공천권을 둘러싸고 친명계 내부의 신주류와 기존 친노·친문계 인사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특히 당권 경쟁 과정에서는 친명계와 정청래 전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이 맞붙는 이른바 '명청대전(明淸大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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