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과 달러 약세 속에서 대표적인 귀금속인 금과 은 가격이 동반 반등하고 있다. 특히 은은 안전자산이라는 금과의 공통점에 더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태양광 등에 사용되는 산업재 성격까지 부각되면서 금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가운데 환헤지 전략을 활용한 삼성자산운용의 은 상장지수펀드(ETF)는 다른 은 ETF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순수 은 가격 추종 ETF 3종은 최근 한 달여간(7월 24일~8월 26일) 모두 강세를 나타냈다. 이 기간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은선물(H)'은 9725원에서 1만1170원으로 14.86% 올라 상승 폭이 가장 컸다. 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은액티브'는 10.16%, 하나자산운용 '1Q 은액티브'는 9.43%씩 각각 상승했다. 3개 상품의 단순 평균 수익률은 11.48%에 달했다.
ETF 강세의 배경에는 가파르게 오른 국제 은 가격이 자리 잡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되는 9월 인도분 은 선물 가격은 지난달 24일 트로이온스당 58.905달러에서 이달 26일 68.395달러로 16.11% 상승했다.
같은 기간 금 가격도 상승했지만, 은의 상승 탄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COMEX에서 거래되는 9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4084.5달러에서 4619.0달러로 13.09% 올랐다. 은 선물의 상승률이 금보다 3.02%포인트 높았다.
국내 금값의 상승 폭은 이보다 작았다. KRX 금시장에서 1㎏짜리 금 현물의 1g당 가격은 지난달 24일 18만9810원에서 이달 26일 20만7500원으로 9.32%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니금(100g)도 18만9850원에서 20만8300원으로 9.72% 올랐다.
최근 원화 강세도 국내 귀금속 투자상품의 수익률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4일 1459원대에서 이달 24일 1381원대로 떨어지는 등 최근 한 달간 하락세를 나타냈다. 달러로 거래되는 국제 은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환율이 하락하면 환노출 상품의 원화 환산 수익률은 일부 상쇄될 수 있다.
반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은선물(H)은 펀드 내 외화 노출을 최소화하는 환헤지 전략을 사용한다. 국제 은 가격 상승분을 추종하면서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것이 다른 은 ETF와 수익률 격차를 벌린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거래되는 은 현물이나 타사 ETF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 결정되는 은 가격뿐 아니라 원화 대비 달러 변동에도 노출돼 있다"며 "환헤지 전략을 통해 외화 노출을 최소화한 결과 최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 자체가 금보다 강한 상승세를 나타낸 데에는 안전자산과 산업재의 성격을 동시에 갖췄다는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중동 지역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미국 통화·재정정책에 대한 우려는 금과 은 등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 은은 금과 달리 실제 산업 현장에서 소비되는 비중이 높아 산업 경기와 첨단산업 투자 확대에도 함께 반응한다.
특히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투자가 새로운 은 수요처로 주목받고 있다. 은은 금속 가운데 전기·열 전도성이 뛰어나 전기·전자제품과 반도체, 전력 인프라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실버인스티튜트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에 의뢰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정보기술(IT) 전력 용량은 2000년 0.93GW에서 지난해 약 50GW로 50배 이상 확대됐다. AI 도입과 데이터센터 증설이 이어질 경우 컴퓨팅 하드웨어와 관련 전력 인프라를 중심으로 은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산업용은 전 세계 은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실버인스티튜트의 'World Silver Survey 2026'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산업용 은 수요는 6억5740만온스로 전체 은 수요 약 11억3000만온스의 58% 수준이다. 2024년에는 산업용 은 수요가 6억8050만온스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AI 관련 응용처 확대와 전력망 투자, 자동차 전동화 등이 수요를 뒷받침했다.
공급이 수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실버인스티튜트는 올해 글로벌 은 시장이 6년 연속 공급 부족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은 시장은 금보다 시장 규모와 유동성이 작은 만큼 투자 수요가 빠르게 유입될 경우 가격 변동 폭 역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최근 은 가격 상승세가 ETF 수익률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선물형 ETF는 선물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보유 계약을 다음 월물로 교체하는 '롤오버' 과정을 거친다. 이때 기존 선물과 새로 편입하는 선물 간 가격 차이에 따라 추가적인 손익이 발생해 현물 은 가격과 ETF 수익률 사이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은 가격의 추가 상승을 낙관하기만도 어렵다. AI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등 새로운 수요처가 확대되고 있지만, 높은 가격에 대응해 태양광 산업을 중심으로 제품당 은 사용량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은이 안전자산뿐 아니라 산업재 성격을 동시에 지닌 만큼 글로벌 경기 둔화가 본격화될 경우 금보다 가격 하방 압력을 크게 받을 가능성도 있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은은 금이 보유한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와 동시에 산업재로서의 시장 수요도 공존한다"며 "달러를 대체할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금과 유사하게 움직이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경기 침체가 발생할 경우 반도체와 태양광 등 산업용 은 수요 감소에 따라 가격이 하방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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