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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제우스의 하늘 아래 변하는 것은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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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실뱅 테송 지음/ 뮤진트리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첫 장을 넘겼을 뿐인데 발이 땅에서 30센티쯤 떠 있는 느낌이었다. 드문 경험이었다. 나와는 달리 어느 공학박사는 번역과 관련해 아쉬움을 표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도 같았다. 어떻게 이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현미경이 아니라 망원경으로 읽는다, 고 답했다. 출간 3일 만에 초판 3만 부가 팔렸고 2018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에세이에 등극한 실뱅 테송의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이다.

9개 챕터와 65개 꼭지로 구성된 책에서 실뱅 테송은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불멸하는 신의 장난질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을, 신들과 영웅과 인간 사이를 종횡하며 간명하고 우아하게 통찰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이고, '오디세이아'는 자기 왕국인 이타케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다룬다. 전자는 전쟁을, 후자는 질서의 복원을 묘사한다.

책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오디세우스와 그를 되살린 호메로스에 대한 평가는 대조적이다. 예컨대 "오디세우스는 가짜 나그네이며 억지 모험가이고, 기질로 보면 붙박이다."라고 언급한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를 빌림과 동시에 "이 힘과 술책의 챔피언은 여러 성향이 충돌하고 있어서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힘들다."고 정의한다. 반면에 성벽을 정복하고 온갖 영화를 누리고 모든 모험을 경험하고 이제 삶의 가치를 되찾고, 탈환한 자기 왕국에서 '남은 생애 동안' 조용히 늙어가길 바라는 한 인간이 보여준 가장 위대하면서도 소박한 노력이 '오디세이아'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장담컨대 인간들 가운데 운명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오. 겁쟁이든 용감한 사람이든 일단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헥토르가 아내 안드로마케에게 한 이 말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을 보여준다. 다만 체념과 수동의 의미는 아니라는 게 작가의 견해다. 그리하여 "닥치기 마련인 일을 받아들이는 이런 능력은 그리스인을 강하게 만든다."고 매듭짓는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으로 질서가 회복되었음에도 여기가 끝은 아니다. 다시 전쟁이 불붙기 직전이므로. '오디세이아'의 마지막 장, 제우스의 책략을 아테나가 받아 오디세우스에게 전달하는 장면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망각'의 미덕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트로이 평원을 덮쳐오는 새로운 공격의 위협을 받는다."면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깨어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협약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2800년 전 이야기가 이토록 실감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인간은 탐욕과 무절제로 일관하기 때문일 터. 마음은 늘 오디세우스의 균형과 절제를 향하지만, 그가 이타케로 돌아가기까지 마녀와 괴물을 상대로 치른 숱한 고난은 쉽게 잊기 마련이다. 인간은 나약하고 쉽게 휘둘리며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래서 실뱅 테송은 인간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라고 단언한다. 위대하면서도 실망스러운 동물이고, 빛을 발하지만 뱃속 깊이 범속한 존재라는 것이다.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과 만나는 순간, 어느샌가 트로이 벌판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읽고 싶어질 것이다. 실은 나도 수시로 두 책을 번갈아 읽으면서 일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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