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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김태진] 제우스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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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가야지"… 광주일고 조롱한 배재고 야구부 두 명, "야구 그만 두겠다"
5.18 민주화운동이 가진 가치를 충분히 지각하지 못한 점은 각성해야 할 부분
'땀은 배신하지 않아'… 노력의 가치 철석같이 믿어온 학생들 안타까운 결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김태진 국제팀장
김태진 국제팀장

전국적으로 이름난 정원이었지만 관람객은 손에 꼽을 만큼이었다. 호젓하게 걸을 수 있어 내심 흡족했지만 뭔가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슬몃슬몃 지켜보던 이의 존재를 알아채자 긴장감이 엄습했다. 관리를 맡고 있는 문중 관계자라 했다.

"이쪽으로는 가서는 안 됩니다" "저쪽으로는 보기만 하세요" 안내, 조언과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참견에 가까운 훈계로 비쳤다. 입장료를 냈더라면 관람권을 주장했을 테지만 무료 관람이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민간에 왜 개방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정 욕구는 혼란을 부르기 마련이다. 나와 너의 기준이 현저히 다를 수 있어서다. 예컨대 나의 어릴 적 추억이 묻혀 있는 공간을 허무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만행이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를 앞두고 일각에서 비슷한 주장을 반대 근거로 내밀었다. "저 건물을 볼 때마다 우리 것이라면 참 좋을 거라 생각했다"는 개별적 추억이었다.

남들에겐 무관심한 물품인데 이를 보검(寶劍)처럼 품고 있다면 '호소인'이 된다. 내 소중한 사인볼, 마라톤 완주 메달, 우표 앨범 등은 가치를 알아주는 이에게나 상찬(賞讚)의 대상이 된다.

영화 '오디세이'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의 동굴에 들어간, 그저 엇비슷한 인간이 살 거라 짐작한 오디세우스 일행은 그곳에서 치즈처럼 발효된 음식을 맛본 뒤 "제우스의 법(크세니아)을 아는 자라면 우리를 환대할 것"이라 오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문명인임을 자부하며 주인을 기다린다. 자신이 대접받길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게 이들이 말하는 '제우스의 법'인데 결론은 키클롭스가 인간이 아니었다는 거다.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상대 팀인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외쳐 파문을 일으켰던 배재고 야구부 학생 두 명이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학교에 전달했다고 한다.

상대의 집중력을 흔들기 위해 조롱 섞인 구호를 외치는 풍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5·18 민주화운동에서 시민들이 흘린 피의 가치를 충분히 지각하지 못했다는 점은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사태 이후 야구부 36명 전원이 광주일고를 찾아가 눈물로 사과하고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진심 어린 행동을 보였다는 점을 복기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결말이다.

분명 학생들이 그동안 흘린 땀의 가치도 낮잡아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늦어도 초등학교 3~4학년부터 시작한 야구였을 것이다. 처음 야구를 시작하며 가졌던 각오와 설렘은 꿈을 향한 추동력이었을 것이다.

선수 출신, 일명 '선출'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인정해 준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가 '선출'임을 확인하면 어린 시절부터 흘렸을 피와 땀의 가치를 알아본다고 한다.

물론 중도에 운동을 그만두는 학생들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좁디좁은 프로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이 상당수다. 엘리트 선수로서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걸 특별하다 보기 어렵다.

5·18의 가치를 공고히 하려는 이들의 경직성이, 다시는 이런 조롱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공포감으로 변질되며 다소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5·18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미성년 학생들을 찬찬히 타일러야 했다. 그걸로 충분했는데 결과적으로 혐오만 낳은 듯한 현실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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