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TK) 출신 영화감독들의 세계 영화제 수상 기록에 또 하나의 굵은 줄이 그어졌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12일(현지시간)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은 것.
한국 영화가 베니스 경쟁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황금사자상 이후 14년 만이다.
◆봉덕동 봉준호·대명동 이창동…둘 다 '대구 남구'
자, 이제 대구경북 지역 언론사에서 쓰는 기사이니 만큼 소소하게 언급할 만한 재미난 우연이 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봉준호·이창동 감독은 모두 대구 남구 출신이라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1969년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나 대명동에서 살며 남도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기생충'으로 2019년 칸 황금종려상에 이어 2020년 아카데미(오스카)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까지 휩쓸었다.
이창동 감독은 1954년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를 거쳐 경북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나왔다. 이어 고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소설가로 등단했고 영화에 뛰어든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1997년 '초록물고기'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고 5년 만인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 은사자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밀양'(2007)은 전도연에게 칸 여우주연상을, '시'(2010)는 이창동 감독에게 칸 각본상을 안겼다. 이번 '가능한 사랑'까지 더해 세계 3대 영화제와의 인연을 다시 이어갔다.
TK로 범위를 넓히면 앞서 언급한 김기덕 감독도 있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 태어난 김기덕 감독은 2012년 '피에타'로 한국 영화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인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세 거장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구 출신 배용균 감독이 더욱 앞서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젊은 세대를 살펴보면 유지영 감독이 2023년 '나의 피투성이 연인'으로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프록시마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정말 'TK의 힘'일까
'TK가 세계적 감독을 길러냈다'고 말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한국 영화산업의 제작·투자·배급과 인적 네트워크는 오랫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돼왔다. 서울 중구의 한 지명일뿐이지만 한국 영화라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충무로'라는 키워드가 그렇다.
봉준호 감독은 초등학교 때 서울로 떠났고, 김기덕 감독 역시 초등학생 시기에 경기 고양으로 이주했다. 두 감독의 세계적 성공을 지역 영화산업의 성과로 돌리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당시 대구 정치권과 지자체에서 '대구의 아들'을 내세운 박물관·거리 조성 주장이 쏟아지자 뒤늦은 '봉준호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때 비판이 매우 옳았다.
◆그래도 이창동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을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그는 대구에서 대학까지 다녔고 경북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경북 영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일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 문학과 현실을 바라보는 감각을 다듬은 상당한 시간이 대구경북에서 흘렀던 셈이다.
그렇다고 TK를 봉준호·이창동·김기덕 감독 성공의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세 사람의 생애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출발점이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까지 억지일까.
어쩌면 TK가 이들에게 제공한 것은 '씨네키드'가 마음껏 영화를 보고 만들 수 있는 풍족한 문화적 기반이 아니라 그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일찍 수도권으로 떠난 봉준호와 김기덕 감독에게는 더 넓은 무대를 찾아 나서게 한 '결핍'의 공간이었고, 오래 머문 이창동 감독에게는 문학과 사람, 지역의 현실을 오래 들여다보며 감각을 쌓은 '축적'의 공간이었을 수 있다.
결핍도 때로는 한 사람을 만드는 환경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면 지역이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했다고 뒤늦게 자랑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그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이 부족해 떠났는지까지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 베니스 은사자상은 그래서 단순히 '대구 출신 감독의 쾌거'만으로 소비하기 아깝다. TK가 세계적 감독들에게 남긴 것이 영감이었는지, 결핍이었는지, 혹은 그 둘이 뒤섞인 어떤 창작의 뿌리였는지를 다시 묻기에 더없이 좋은 순간이다.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개혁 이름으로 개혁 방해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
남북 교류 막혔는데 또 1515억…"남북협력기금 '쌈짓돈' 우려"
靑 "용혜인 회견, 청와대와 협의 無…국민께 설명 기회는 제공돼야"
홍준표 전 대구시장 변호사 등록 "송무 가급적 안 하고 상담만"
李대통령 지지율 38% 또 최저…김승원·용혜인도 '부적합' 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