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둘러보면 자기소개서 대신 사업계획서를 쓰고, 신입사원이란 직함 대신 '대표'로 사회에 발을 내디딘 이들이 있다. '안정적인 직장'이란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는 청년들이다. 한복 새활용(업사이클링) 업체 '호롱잡화점'을 운영하는 이민지(26) 대표도 그 중 한 명이다.
호롱잡화점은 버려지는 폐한복이나 자투리 한복 원단으로 새활용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가방, 댕기, 키링, 헤어밴드 같은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한다. 한복 새활용 공예체험수업도 빼놓을 수 없는 사업 분야다. 생활 속에서 한복의 존재감을 지키려는 시도다.
지난 10일 대구스테이션센터(옛 대우빌딩) 11층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가 말했다.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작은 목소리'가 호롱잡화점의 슬로건이라고.
◆대학 시절 창업동아리 꾸려 시작
"정해진 일만 수행하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큰 성취를 느꼈어요. 특히 환경과 전통을 연결하는 일은 기존 기업이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직접 시장을 개척하고 가치를 입증해보고 싶었습니다."
호롱잡화점은 계명대 창업 동아리에서 출발했다. 처음 시제품이 나온 건 5년 전인 2021년. 이 대표가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이 대표의 전공은 광고홍보학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입시 미술을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반 학과로 진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온라인 액세서리 쇼핑몰을 열어 운영했다. 예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자신감이 붙었고, 창업에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
"학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른 일이 더 재미있었던 거죠.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우선이었던 것 같아요. 남들처럼 공부 열심히 해 장학금을 받고, 4년 내내 학점에 매달리다 취직하는, 틀에 박힌 삶은 별로 살고 싶지 않았어요."
당초 호롱잡화점은 계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19학번 동기로 구성된 동아리 이름이었다. 한국 전통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뭔가를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창업 동아리를 만들어 2020년부터 대학 창업교육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처음엔 마우스패드, 필기구 등 한국적인 굿즈를 제작할 생각이었다. 어느 날 시장조사를 위해 방문한 서문시장에서 버려지는 한복을 보게 됐다. 한복 업사이클링의 시작이었다.
"많이 속상했죠. 전통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돌이켜보면 부산진시장에서 수십 년 한복집을 운영해온 할머니와 고모를 어릴 때부터 봐왔기에 한복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남달랐던 것 같아요. 게다가 한복은 의류 수거함에 넣을 수 없고 처리하려면 일반쓰레기(종량제 봉투)로 버려야 해요. 기본적으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 의류이기 때문이에요. 버려지는 한복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법을 찾아보다 생활 속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부모님 응원과 대학의 지원이 큰 힘
이 대표가 어린 나이에 창업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부모님의 전폭적인 응원이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은 고민 말고 시작해봐' '민지는 뭐든 잘 할 거야'라는 부모님의 말을 늘 들으며 살았기에 큰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 새내기 시절 그는 창업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어 교내 강의 목록에서 창업과 관련한 수업을 모두 찾아 들으며 공부했다. 사업 공간과 초기 자본을 마련하는 일도 큰 벽이었다.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며 체력적·시간적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지켜내는 일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계명대 창업지원단은 큰 힘이 됐다. 창업 교육과 세무회계 교육 물론 선배 창업가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웠다. 특히 시제품 제작비 지원은 엄청난 도움이 됐다. 그는 창업지원단의 지원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시제품 제작에 3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하면 학생 신분으로 그 돈을 모으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나 1년이 걸릴 일을 창업지원단의 지원을 통해 단 3, 4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죠. 창업 초기 필요한 교육과 예산을 적기에 지원받을 수 있었기에 동력을 잃지 않고 지금껏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통과 환경, 미래 세대 위해 지켜야 할 것
이 대표는 대학 졸업 2개월을 앞둔 2023년 6월 '주식회사 호롱잡화점'을 설립했다. 4년차인 올해 호롱잡화점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이곳에선 '조선백'으로 이름 붙인 가방, 헤어 액세서리, 키링 같은 생활 액세서리, 오브제 등을 판매한다. 제품 종류로는 20개가 조금 넘는다. 모두 이 대표가 수정을 거듭하며 직접 디자인한 것들이다. 한복의 오염도나 무늬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벌로 가방은 3~4개, 댕기는 10~15개가량 만들 수 있다.
호롱잡화점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품목은 키링이다. 전통 아이템을 부담 없이 지닐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모든 제품은 주문과 동시에 제작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자에게 제작할 수 있는 원단을 보여준 뒤 선택한 원단으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식이다. 때론 갖고 있는 한복을 맡기고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호롱잡화점은 시니어 제봉사와 협업을 통해 제품을 만든다. 과거 대구가 '섬유도시'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 활발히 활동했던 60대 재봉사들의 줄어든 일감을 조금이나마 지원하고픈 이 대표의 마음이 담겼다. 그렇다고 모든 제품 제작을 시니어 재봉사에 맡기는 건 아니다. 이 대표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제품도 다수다.
그의 재봉 실력은 수준급이다. 호롱잡화점을 시작하며 할머니께 재봉 기술을 배웠고, 시제품 개발과 제품 제작에 참여하며 꾸준히 기술을 익혔다. 지금은 호롱잡화점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제품에 전통 공예 요소가 많이 들어다보니 재봉사께 모든 걸 맡기기엔 죄송스런 부분이 있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제품은 제가 직접 만들고 있죠."
이 대표는 한복 새활용 체험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 의상인 한복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최근 들어 학교·기관 등의 요청이 부쩍 늘었다. 이날도 이 대표는 인터뷰에 앞서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한복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폐기된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한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지는지에 대해선 깊이 알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이 수업이 한복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민지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전통과 환경, 이 둘의 공통점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버려질 뻔한 한복을 자르고 깁고 덧대어, 기어코 새것으로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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