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예작가 중편 릴레이

춤추는 숲 엄 창 석

이 병 헌 화오른손을 위한 낙장 30

그런 언급들을 떠올리며 동유는 허록의 악보들을 펼쳤다. 김수영 시(시)의{폭포}에서 암시를 받은 바이올린 소나타, 피폐한 호남의 한 평야를 다녀와써내려간 {넋잃은 산야}, 리듬이나 선율자체의 아름다움만을 그린 절대음악(절대음낙)으로 {무반주 바이올린 3번}, 그리고 랩소디풍(풍)의 미완성 모음곡이 있는데 홍경래가 산채에서 민중들과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오선지 위에 휘휘 펜으로 그어진 그의 곡은 동유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선영과의 갈등이나 의혜에 대한 동경같은 것은 뒷날로 미루어졌다.물론 허록의 심리상태에 대한 혐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허록 자신이 오래전 필하모니와의 협연(협연)이 포기되고 그 후로 더할 수 없는 좌절이 이어져 끝내 제도권 음악에 대해 대항자로 돌아선 탓에 이런 음악을 시도하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가끔 보이는 광기어린 행위가 그런 심리를 반영하는게 아닌가.

하지만 어떤 예술가이든 나름대로의 자의식과 피해의식이 없고는 치열한 싸움을 지탱하지는 못할 터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무리하게 연습하다 손가락을 다쳐 버린 슈만, 사랑을 향한 정염을 일생동안 심장처럼 가지고다녔던 베를리오즈, 조국 핀란드의 고통을 견딘 시벨리우스등등 수많은 위대한 음악가들이 그러질 않았던가. 그렇다면 허록의 되풀이된 좌절도 자신으로하여금 새로운 안목을 얻게 해준 귀중한 선물이 아닐 터인가.다시 동유에게 연습실과 집을 오고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밤무대에서 생활비를 벌어오는 허록도 보람을 느끼는 눈치였고, 일주일에서 한번씩은 선영이과일을 사들고 연습실인 빈교회당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오곤 하였다.물론 저녁무렵 그의 2층 방 창문을 열면, 길건너 조금 떨어진 화원(화원)에서 매일같이 꽃에 물을 주는 의혜가 보일 테지만, 동유는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나, 그런 사이에 가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젊음을 시켜 음악의 알을 깨고 나가라 충동질하는 그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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