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나는 그 돈을 받고 싶구나

@@형사시인의 더운가슴@@"청렴하게 살자고 다짐하면서 밤마다 일기장에 뇌어보지만 이따금씩 누군가가 돈봉투를 내밀면 나는 그돈을 받고 싶구나. 더럽다 나의 몸은 오늘밤도 청렴하게 살자고 다짐해 본다" 인천동부경찰서 형사과에서 4년째 형사로 근무하고 있는 시인 류종호씨(33)가 최근 펴낸 {가슴이여 뜨거운 가슴이여}란 시집에 실린 {다짐}이란 시의 전문이다. {형사수첩} {잠복근무} {영장을 집행하면서}등 지난 한해동안 형사근무 틈틈이 떠오르는 시상을 시로 엮은 그의 시집을 읽고 있노라면 버티고 있는 삶 동안에는 잠시도 눈을 감지 않으려는 서늘한 영혼이 섬뜩하게 느껴져 소름이 돋곤 한다.

"이상하다. 업소단속 하는날 보면 큰업소는 한번도 단속안하고 빽없는 포장마차만 죄다 단속을 한다. 아니면 없는 사람들 먹고 살려고 바둥대는 좌판이나 모조리 단속을 한다. 왜 큰 업소는 한번도 단속하지 않는건지 생각하면 참이상한 일이다" 그의 시 {이상한 일}의 전문이다.

@@{복지안동}시대 도래@@

치열한 자기성찰의 고백록이라고 할만한 그의 시편들은 우리 생활주변에 질펀히 널려 있는 {유혹} {회의} {모순}들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부르고 있다. 가만히 귀기울여 들으면 그것은 자규의 피울음섞인 절규로 들리기도 한다.

YS정권이 개혁을 전제로 한 사정작업을 벌이기 시작하자 많은 고위공직자들의 목이 단칼에 떨어졌다. 공직사회의 찬바람은 계절의 구분없이 쉼없이 불어닥치자 국민의 공복이라는 공직자들은 그야말로 {복지부동}, 아예 땅위에 엎드려 눈도뜨지 못하고 바람잘날만 기다렸다.

새해에 접어들고 김영삼대통령의 연두교서에도 {개혁의 지속}은 강조되었지만 정부로서도 언제까지나 사정의 칼날만 갈고 있을수도 없어 개혁의 강도는어느 정도 약화되었고 찬바람또한 잦아 들기 시작하고 있다. 지상에 엎드려있던 {복지군단}의 병사들은 부동자세를 풀고 슬슬 {복지안동}자세로 바꾸고있다고 한다. 강풍과 소나기를 피한 몸은 아직도 땅에 엎드려 있지만 눈알을움직여 주변환경을 점검하고 있다. 꿀맛 같은 봉투를 받아도 되는지 아니면허가와 단속을 빌미로 돈을 먹어도 되는지를.

@@고뇌해야 삶의 질 향상@@

형사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시편들은 오늘의 세태를 잘 반영해주는 명징한 거울이다. 정부는 UR협상후 우리의 갈길을 {국제화.세계화.미내화}라고 천명한바있다. 이러한 {화}작업에는 동참의 인식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다함께 발맞춰 병사가 진군하듯 나아가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 이런 판국인데도 국회에서는 돈봉투를 사이에 두고 {먹었냐} {안먹었다}로 시끌벅적하게 싸우고 있다. 또 밤이면 난세에서나 있을법한 도적들이 조편성을 하여 떼도둑질을 하고있으니 민심은 흉흉하여 세계로 나아가려는 발길을 더디게 하고 있다.행정학을 전공하고 있는 어느 교수는 엎드리고 있는 공직을 일으켜세우려면*정부의 개혁의지가 뚜렷하고 지속적이어야 하며 그 내용이 분명해야 하고*정치환경의 민주적 개선이 따라야 하며 *관료제 내의 의사소통 구조를 민주화하고 참여를 제도화해야 하며 *공무원에게 책임과 함께 상응하는 권한을 부여해야 하며 *공무원의 인력구조를 관리중심에서 사업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김영삼정부의 개혁은 공직의 상층부만 뒤흔들어 놓았을뿐 하층구조에는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를 심어주어 국민의 일상적 삶에는 오히려 악영향을끼치고 있다는 평도 일고 있다. 이제 정부는 {복지안동}중인 공직자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한다. 바람이 벗길수 없는코트를 햇볕은 능히 벗길수 있다는 우화를 한번쯤 상기해보아야 한다. 모든공직자들이 형사시인처럼 현실에 대해 {회의}하고 {고뇌}할때 비로소 우리의삶의 질은 한결 높아지게 될 것이다.

(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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