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활하는 새 12

의혜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날이 어두웠다. 이층집 그의 방은여전히 텅비어 있었다. 허록이 들렀다 갔는지 싱크대에는 라면을 끓여먹은흔적이 남아 있었다.동유는 빈방에 오도카니 앉아 좀전 헤어진 의혜의 향취를 되새기다 무슨 생각이 떠올라 다급하게 책장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책장에는 대개 허록이 끌쩍거리다 둔 오선지(오선지)낱장들이 철끈으로 묶어진채 꽂혀 있었다. 동유는그 갈피 사이를 헤쳐보았지만 찾고자 하는 악보는 보이지 않았다. 기껏 뽑아낸게 초보 교습용 악보와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 무소르그스키등의 민족주의성향 작곡가들의 악보정도였다. 그들의 악보를 뒤적여보던 동유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시내에 있는 음악 전문서점으로 택시를 몰았다.모짜르트, 슈베르트, 그리고 몇장의 영화음악등 대중용 악보를 구해들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악기를 들고 연습실로 달려갔다. 늦은 밤에 허록이 집으로올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금서(금서)를 입수한 양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연습실 안은 어둠이 가득차 있었다. 지상에 반토막 걸려있는 맨앞 창문으로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이 오히려 어둠과 고요함을 느끼게 하였다. 서점과레코드점에서 곡을 구할때 살펴본 음표들이 어느덧 머리 속을 흘러다녔다.앞 좌석으로 조심조심 걸어가 스텐드 불만 켰다.

구해온 곡들은 감미로운 선율로 되어있어 무척 연주하기가 쉬운 편이었다.슈베르트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속의 한 악보를 폈다.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느냐!

언젠가처럼 허록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그렇게 꾸짖을 것 같았다. 동유는 머리를 흔들며 활을 켜 나갔다. 리듬과 선율이 쿵쿵 뛰는 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덕지덕지 화장을 칠한다고 속모습이 변하겠느냐. 그 따위 곡으로 삶을 호도하지 마라.

관습의 힘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의 자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조금만 자리를 비켜 앉아도 날카로운 경보음을 울리는 것이 관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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