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춤추는 숲78

"네 나이 이제 스물다섯이다. 어딜 내놓아도 연주솜씨 하나는 뒤지지 않는다.그런 너보고 반드시 내가 하는 음악을 따라오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네스스로 확인한 논리, 관념, 음악이 사소한 장애에 꺾여서는 안된다"허록이 무엇을 생각하여 '사소한 장애'란 말을 했을까. 하지만 동유는 그 말에 대해 더이상 곱씹고 싶지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지금껏 지나치게 복잡한사고가 그야말로 '사소한 장애'로 작용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동유는 착실한 제자같이 혹은 온순한 아들같은 태도로 장롱에서 허록이 덮을 이불을 꺼내 조심스럽게 바닥에 폈다.허록도 더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담배 한대 태우고잠자리에 들었다. 동유도 허록에게서 다시 무슨 말이 튀어나올세라 얼른 전등을 끄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허록은 숨소리가 고른걸 보아 의외로 잠이 들은건지도 몰랐다.

그리고 얼마나 있었을까. 허록의 말소리가 들렸다.

"내 젊은 시절에도 한 여자가 있었지..."

허록은 동유가 잠이 들지 않은 것을 아는지 확인도 않고 작은 소리로 얘기를시작했다.

"어저께 왔던 강희란이 같은 아주 예쁜 애였어. 서로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칫솔질도 해줄만큼 온몸으로 사랑했던 사이였지. 피아노를 공부하는 음악도였는데 내 연주도 그녀를 위해서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없이는 내 음악도 없다고 여겼다. 어느땐 새로운 곡을 연습하면서 그녀 육체의 새로운 처녀지(처녀지)를 애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으니, 음악과 사랑이 어지간히일치가 된 형국이라 할수 있겠지. 필하모니와의 협연이 뜻밖의 사건으로 좌절되었을때도 사실 그 열애의 와중이었었다. 내가 결국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이포기되자 그녀는 다른 연주자를 좇아 떠나버렸어. 나는 이해할수 없었다. 연주자가 못된다고 왜 그녀까지 놓쳐야 하는가를 말이다. 꽤 오랫동안 그녀가떠나간 허공에다 헛된 열망만 뿜어대었어. 그러던 어느날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아주 명쾌한 이유를 하나 남겼지. 자신이 내 바이올린 연주를 피아노반주하려 했는데 그걸 못하게 되었으니 헤어지는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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