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운명(운명) 아홉[우린 줄곧 헝가리 여행을 함께 했지요. 한강과 별 다를 바 없이 더러워진도나우 강도 보고 넓은 평원을 하염없이 달리기도 하고 어떤 프랑스 귀족이오랫동안 살았다는 성에서 함께 묵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리곤 신촌에서우연히 다시 만났어요.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 신촌역 앞에서. 잔뜩 술에 취해 있더군요]

이 무슨 이야기인가. 그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지 아주 잘 알고있다는 투로 그림을 그려 보여주듯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었다.혜수와 만났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엉뚱하게도 줄곧 나의 손금을 살피고있었다. 여고 때 장난삼아 손금을 본다거나 한 적은 있어도 다 큰 남자가그처럼 진지한 태도로 손금을 보는 것을 전에는 본적이 없어 나는 당황스러웠다.

난 손금이 어떠냐고 어색하게 물었다.

[혜수는 수도자의 손금이더니......이 손금도 색다른데요. 독신자로 살아갈운명인데다 감수성은 풍부하지만 운명선이 약해서 크게 변동을 겪거나 특별하게 드러난 삶을 살지는 않겠군요. 하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뭔가 한다면 좋을텐데......]

그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얼른 두 손을 거두었다.처음 우려했던 것과 달리 그가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져 나는 망설이지 않고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은 서울이 아닌가요? 어떻게 이곳까지 오시게 되었나요?][혜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혜수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극도로 싫어해요. 이곳에서도 앞으로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거예요. 저는 이런 것들이 모두 운명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일은 순응해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부모님과 얼마간 마찰이 있긴 하지만 저만큼 혜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어요. 혜수는......듣기에 이상하실지 모르지만 이곳에 적당한 사람이 아니예요. 아무 것도 이곳에서 혜수를만류할 수 있는 건 없지요. 지수씨도 혹 그걸 걱정하시는 것 아닙니까]그는 무엇 하나 숨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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