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실속을 챙기는 정치

**다원화된 세계**오늘의 세계가 다원화되어 있다는 말은 이제 아주 낡아빠진 정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한반도와 한국인이야말로 다원화된 세계 속을 어느나라 국민들보다도 앞장서서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고, 또한 지구촌을 더 다원화시켜가는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겪는 비슷한 실례를들면 이렇다. 한쪽에서는 전국민이 거의 광적으로 월드컵 대회에 열광하고 한국 축구팀의 16강진출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남총련 소속의 대학생들은 방학 중임에도 전국을 무대로 수백명씩 몰려다니며 UR비준 반대 데모를 벌이고 전투경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가 하면 열차를 정차시키는 공공질서의 파괴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다. 뿐인가. 미국은 핵 소지를 미연에 막겠다는 빌미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늦추지않겠다고 하는데 남북정상회담의 성사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국내외의 이런 다급한 정세속에서도 지하철노조와 철도기관사들은 파업을 강행했으며, 재야의 다른 노조도 연대투쟁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런전국가적.전국민적 긴장이 광풍처럼 겹겹으로 몰아쳐오고 있는데도 대다수한국인의 정서는 적어도 겉으로는 느긋하고, 각자가 삶의 여유를 최대한으로찾아먹겠다고 바쁘다. 하기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런 풍요로운 여유와국가적 긴장에 대한 대처 능력 자체야말로 우리의 국력을 한눈에 알아 볼 수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덤벙대는 외교정책**

그러나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태가 바로 코앞에 닥친 것도 엄연한현실이다. 가령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선진국들이 이른바 '가격경쟁의 논리'를앞세우면서 세계무역질서를 재편하려는 의지가 기정사실이고, 그에 발맞춰UR비준의 조속한 국회통과가 김영삼 정부의 어쩔수 없는 당면시책이라면 우리의 농산물 시장과 농촌경제는 미구에 공동화될 게 불보듯 뻔하다. 바로 그 이유때문에라도 남총련 소속의 대학생들이 떠들고 나서는 UR비준반대 데모는 일단 명분이 뚜렷하다. 다만 그들의 폭력시위만은 관용의 여지가 없는 난동일뿐만 아니라 '대안 없는 반대' 나아가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지탄을 받아마땅하고, 또다른 '목적'을 기도하려는 혐의가 없지 않다.

대체로 말해서 우리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정력, 실속을 챙기지 않는 경제시책, 덤벙대는 외교정책, 떠벌리기 좋아 하는 문화정책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아니다. 그 실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한가지만 들면 이렇다. 생산자가2백원 받고 넘기는 배추 한포기를 소비자가 천원에 사 먹는 한심한 유통구조는 분명히 오래 전부터 척결해야 하는 '구조악'인데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있다. 이 사례야말로 말로 떠벌리기만 하는 행정력, '부의 분배'라는 허울좋은 구호성 경제시책과는 겉도는 정치력 그 자체이고 UR비준후 우리 농촌경제의 질적 개선에 대한 어떤 '담보'도 정부가 마련하고 있지 않다는 산 증거일 수 있다.

실속을 챙기지 않는 이런 정책은 비단 경제시책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통일정책만 해도 그렇다. '구체성이 전혀 없었던' 박정권때의 남북공동성명이 그좋은 예인데 그 전통(?)이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정상들끼리의 만남을 북한이 꾸준히 기피해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카터 전미국대통령의 메시지만 일방적으로 믿고 '우선 만나고 보자'식의 전보통지문을 허둥지둥 띄운정부시책이 과연 실속을 챙기고 있는 전략인지는 반성해볼 여지가 많다. 물론 두 정상의 '만남'자체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크다.

**'회담위한 회담'은안돼**

그러나 의제도 없는 만남은 비경제적일뿐더러 '회담을 위한 회담'일 수도 있고 분단극복에 대한 에드벌룬 같은 환상만 전국민에게 심어줄 소지가 다분하다. 풍선에 바람이 빠졌을 때 전국민의 황당한 실망감을 미리 보전해두기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의 실무자들은 '놓쳐서는 안되는 실속'이 무엇무엇인지를장단기적인 시각으로 면밀히 챙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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