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69)

다시 날이 밝았지만 간밤의 언니 일로 내 마음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온몸이 찌뿌드드하고 눈알은 유리 가루를 뿌리듯 따끔거렸다. 나는 간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시시각각으로 탈바꿈하는 밤의 빛깔을 맑은 눈으로 지켜보며 우리가 탈출할 공간은 어디인가를 생각했다. 새벽녘에야 잠시눈을 붙였지만 악몽을 꾸는 언니의 비명소리에 소스라치게 눈이 뜨였다.나는 작은오빠가 지은 아침밥을 건중건중 먹는 흉내만 내다가 현관을 나섰다.작은오빠는 내가 여간 걱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 얼굴이 많이 상한 것같다며 집안 일은 자신이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하라고 신을 꿰고 있는 내 등에 대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거리고 현관 계단을 내려섰다. 오랜만에 작은오빠가 단잠을 잤는지 표정이 많이좋아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다.꽃처럼 화사하게 물든 골목 햇살이 고왔다. 붉은 햇살을 등지고 총총히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도 보이고 그 사이로 쓰러지는 투명한 바람도 보였다. 저렇게 햇살은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유독 우리 집만 비껴가는 것만 같아 서러웠다. 언제쯤이면 우리집에도 밝고 따스한 햇살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는적는적학교로 향하며 그 아득한 날을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고 있었다.언니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언니가 우리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랐으나 간밤의 술이 과했던지 언니는 기어이 이불을 걷어내지 못했다. 나는 언니의 직장 친구 영미언니에게 전화를 하며 착잡한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여태 그런 일이 없던 언니였다.

영문을 모르는 작은오빠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 속내를 자세히밝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만으로도 벅찬 오빠에게 언니 일까지 덤터기 씌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결국 우리 집은 하룻밤 사이에 환자 하나가 더 늘어난셈이었다.

나는 언니만이라도 하루 빨리 정상을 되찾아 주기를 바랐다. 성격이 너무 낙천적이라서 자주 어머니께 꾸지람을 듣던 언니가 아니던가. 언니의 아픔을 생각할수록 형부될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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