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제네바핵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러시아정부의 머릿속은 예상대로 몹시 복잡한 것 같다.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긴장속에 몰아넣었던 북한 핵개발의혹 때문에 발생한 긴장이 해소된 데 따른 여타 관련당사국의 안도감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대로 자신이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에서 사태가 원만히 수습된 데 대해 불만을 터뜨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이런 사정은 러시아 외무부가 북-미 핵협상이 타결된 직후 가진 주례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논평에서도 뚜렷이 엿보인다.
미하일 데무린 외무부 부대변인은 이번 북-미합의를 "환영한다"고 말문을 열었으나 곧바로 "핵문제는 한반도의 여러가지 문제들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개발의혹을 둘러싼 긴장이 해소될가능성은 열렸으나 문제의 전부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러시아정부는 그동안 핵확산금지조약(NPT)상의 의무이행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사찰 수용을 북한측에 촉구하면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지지한다는태도를 견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 핵개발의혹을 둘러싼 문제는 물론 한반도 문제를 {항구적이고도 안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당사국 전체가 참여하는 국제회의가 소집돼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고 이를 고수해왔다. 러시아 정부가 이처럼 국제회의를 고집한 까닭은 지난 수십년간 특수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북한이 직접 관련된 문제에서 소외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더나아가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 예속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발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모스크바 외교관측통들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물론 러시아정부가 북한핵 문제에서 국외자로 배제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데는 이러한 정치외교적 판단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계산도 깔려있었다.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수로를 러시아제로 결정할 경우 적어도 15억달러이상의 경화를 벌어들일 수 있고 이런 정도의 돈은 어려운 국가 경제에 적지 않은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의 도입을 꾸준히 거부해 온 데다 북한기술자가 러시아기술에 익숙하다는 명분까지있어 거론하기 편리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사정때문에 러시아 외무부는 유례없이 신속하게 회담결과에 대해논평하면서 국제회의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북한에 경수로를제공하는 문제를 포함해 북한 핵문제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참여할 준비가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여기에 덧붙여 러시아정부는 이날 최근 국내언론들이 {러시아의 대북편향}을우려하는 데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내용의 다소 이례적인 논평도 곁들여 기자회견참석자들을 의아하게 했다.
이 부분과 관련된 러시아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러시아는 한국과 기존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지만 북한과도 호혜정신에 입각해 상호 선린관계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으며 이는 정책 변화라고 할 수 없는 데도 국내 언론이 이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관측통들은 러시아외무부가 북핵협상에 곁들여 이런 논평을 내놓은 것은우선 한반도에서 자신들이 일정한 외교적 역량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면서 앞으로 진행될 무수한 한반도 관련 국제협상에서 러시아가 배제돼서는안될 것이라는 점을 재삼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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