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시대 과시장소 발견

19세기초 조선조의 과시장(과시상, 과거시험 응시장)이 발견돼 당시 과거시험 현장에서의 과시장의 형태와 심사방법 등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있다.최근 서예가 이봉호씨가 입수, 공개한 이 과시장은 순조 27년 정해년(1827년)8월22일 치른 과거시험에서 차하(차하)를 받았던 례안인 오구의 응시지로서 응시자의 인적사항이 적힌 부분을 미리 잘라 응시하게 한후 심사후 다시답지와 조각을 맞춘 것으로 보여 엄격한 심사방식이었음을 짐작케하며 시관(시관)의 이름,심사소감 등이 명기돼 있는 등 당시 과거시험의 심사형태 등을 밝혀주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오구의 과시장은 가로 약 1백76cm, 세로 74cm의 규격으로 얇은 닥종이 5-6장을 겹친듯 상당히 두껍고 단단한 지질이며, 종이자체는 황갈색으로 변색됐으나 행서체 글자들의 먹색은 깨끗한 상태이다. 오랫동안 둥글게 말린 형태로 보관되어선지 아니면 글씨를 똑바로 쓰기위해 애당초 종이자체를 접었는지 글자 한줄마다 거의 균일한 폭으로 주름이 잡혀있다.과시장에는 오른쪽 맨윗부분에 응시자의 인적사항이 적혀있고 문운(문운)으로 시작되는 답지의 본문 오른쪽 아랫부분에 심사관인 시관의 소감과 이름,이어 응시자의 글이 쓰여져 있다. {유학 오구...}로 시작된 인적사항은 년 48,본 고창, 거 예안 등으로 자신을 밝히고 {부 학생 주현, 조 학생 명기...}식으로 증조부, 외조부까지 밝혀 당시 과거시험이 요구했던 인적사항 범위를말해주고 있다.

또한 오른쪽 가로 약 20여cm 넓이로 아래까지 일직선으로 잘라 삼줄로 아래위 두 군데에서 연결시켜 놓은 형태로 맨위와 아래쪽 좌우에 오사라는 글자가 세군데나 쓰여져 있는데,맨위쪽의 오사는 글자가 절단된 양쪽으로 갈라져있고 아랫부분은 대칭형을 이루고 있다. 이봉호씨는 이에대해 [과장에서 접수할때 시험관이 접수번호 또는 모종의 표식으로서 오사라는 글자를 쓴후 엄정한 심사를 위해 과시장을 양쪽으로 절단,인적사항이 적힌 부분을 따로 보관했다가 답지에 대한 심사가 끝난후 다시 글자를 맞춰 연결시켰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이 과시장에는 {시관 이시원}으로 심사관의 이름이 명기돼 있는데이시원(1790-1866)은 정조14년에서 고종3년까지 살았던 당대의 학자이며홍문관교리, 이조판서 등 관직을 거쳐 1866년 병인양요때 강화진이 점령되자울분을 못이겨 자결, 영의정에 추증된 사람으로 당시 과거시험 시관의 사회적 위치를 짐작케 하고 있다.

한편 조선조의 과시장은 19세기말엽에 이르러서는 응시자의 인적사항을 오른쪽 아랫부분에 기록하게 했고 그 부분을 안으로 둥글게 말아 봉함표식(근봉)을 한후 심사가 끝난후 원상태가 되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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