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1운동 하늘이 도왔다

올해 광복 50주년과 3.1 독립운동 제76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기미년의 3.1독립운동이 하마터면 무산될 뻔 했던 비화를 보훈처가 공개해 눈길을 끌고있다.1일 보훈처에 따르면 3.1운동의 이틀전인 1919년 2월 27일 밤 독립선언문3만5천장이 천도교 소유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한창 인쇄되고 있을 즈음 보성사에는 일제종로경찰서 조선인 형사인 신철이 들이닥쳤던 것.신철은 당시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붙잡아 투옥시킨 악명높은 인물로 보성사사장으로 인쇄작업을 지휘하고 있던 옥파 이종일선생(1858-1925·대한민국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은 신형사에게 "이것만은 안되오. 이일은 멈출 수없는 일이오"라며무릎을 꿇고 매달리면서까지 설득을 시도하면서 우선 신형사를 대기케 했다.

옥파선생은 이어 근처 손병희선생의 집으로 가서 전후사실을 고하자 손선생은 5천원을 신문지에 싸서 옥파선생에 건네주었으며 옥파선생은 곧바로 신형사에게 가서 돈뭉치를 전달하자 그는 아무말없이 돈뭉치를 들고 보성사를 빠져 나간 뒤 잠적 했다.

신형사는 이후 만주쪽으로 피신했으나 일경에게 붙잡혀 조선으로 압송되던중열차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에 따르면 옥파선생은 신형사를 내보내고 다음날인 28일 새벽 손수레에독립선언문 2만5천장을 싣고 그 위를 성주 이씨 족보로 위장한 채 외부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마침 일경의 파출소 부근을 지나다가 일경의 불심검문에 걸린 것.

수레에 실은 내용물이 무엇이냐는 일본 경찰관의 질문에 옥파선생은 성주이씨 족보라고 대답했다. 일경은 직접 칼이 꽂힌 장총으로 손수레를 뒤지기 시작했으나 독립선언문이 발각되기 직전 정전이 되는 천우신조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에 일경은 등잔을 가지러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고, 파출소내에서 근무하던다른 일경이 "무슨일이냐"고 묻자 "족보라는데 이상하다"고 하자 "그만두라"고 지시해 옥파선생은 무사히 독립선언문을 운반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3월1일 역사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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