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시집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이른바 '시인'이 된 지도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내가 어찌 시를 아는 사람일까마는그래도 느릿느릿 시를 읽고 또 써왔다. 20년전에는 데뷔만해도 금방 전국의 시인들에게 알려지고 그만큼 시인 행세도톡톡히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이 어떤 세월인가. 시집도 한권없이 시인 구실하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처음에는 세상에서 알아주는 바람에 나 또한 세상을 알기 바빴고 시인인척 하기 바빴다. 세월은흘렀다. 스스로의 해안선을 지키기 위한 문학 잡지도 엄청나게 불었고 계속 불어나고 있다. 이제 아무리 문학에 미친 사람도정말로 미치지 않고서는 모든 문학 잡지를 다 사 볼수는 없게 되었다.둔한 재주로 펼치기 어려운 정을 어렵게 펼치고 붙여 발표해봐야 그 잡지를 사보는 사람은 수천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제대로 읽어주는 사람은 몇명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읽고 싶은 사람(사실대로 말한다면 읽히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고 싶어서 '시집'을 묶을 필요성도 커지게 되었다.시를 읽거나 쓰는 사람은 대개 스스로의 타고난 성품과 가까운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이제 데뷔 20년이 되고 보니 재주는 멀지만 욕심은 가까와서 시집이라도 한 권묶어보았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리저리 긁어 모아보니 치우치고 아둔한 찌꺼기라서 장독대도 덮을 만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나간 잘못에도 마음 쓸만하다는 생각이들어 '시집'으로 묶어볼까 한다. 그동안 시인인 척하는 나를 눈감아 준 사람들에게 눈감고 슬쩍 건네드리고 싶어서.

〈대구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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