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천전리). 마을앞에 반변천이 유유히 흘러 마을을 '내앞' 또는 '천전'이라고 일컫게 됐다고 한다. 이곳은 의성김씨 집성촌(현재1백여가구 거주)이다. 조선중기 내앞에서 태어난 학봉(학봉) 김성일(김성일)선생은 대학자로 명성을 날렸다.그러나 내앞마을이 근세에 더욱 유명해진 것은 일송(일송) 김동삼(김동삼)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항일지사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대구지방보훈청에 따르면 내앞출신으로 독립유공 애국장 이상의 훈·포장을 받은 사람은 김동삼선생(대통령장) 김규식(김규식)장군(독립장) 김성노(김성노) 김성노(김성노)김정익(김정익) 김필락(김필락) 김장식(김장식)선생(이상 애국장) 김후병(김후병) 김대락(김대락) 김병도(김병도) 김영춘(김영춘) 김정식(김정식)선생(이상 애족장)등 12명이다. 이밖에도 독립운등을 했던 내앞 출신인사는 수없이 많다.
서로군정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경에 잡혀 1922년 평양감옥에서 옥사한김성노(김성노:본명 종훈)선생의손자인 내앞마을 김숭종씨(73)는 "청계공(김진선생)으로 부터 내려온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가풍때문에 항일지사가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충과 효를 중시하는 유학적 정신세계를가지고 있어 항일운동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앞출신 인사들은 애국계몽 교육기관인 협동학교 설립(1907년)을 시작으로 의병전쟁,3·1운동,서간도의 서로군정서와 신흥무관학교 설립,북간도의북로군정서와 청산리전투,광복군등에 중추적인 인물로 참여하는등 국내와 중국을 무대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특히 김동삼선생(1878~1937)은 서로군정서 참모장,국민대표회의 의장,정의부 참모장및 행정위원,임시정부 국무원,민족유일당 촉진회 위원장및 군민회의 의장등을 역임하는 등 중국지역 항일운동의 최고 영도자 역할을 하다1937년 3월3일 서울 마포감옥에서 순국했다.
또 호은(호은) 김규식장군(1880~1931)은 의병활동을 하다만주로 망명해 북로군정서 중대장,대한독립군단과 고려초명군 총사령관 등을 지내며 '호랑이장군'으로 위명을 떨치다 안타깝게도 동족의 손에 숨졌다.
김숭종씨는 "내앞에서 항일지사가 수없이 배출되자 일본경찰은 마을에 첩자를 3명이나 둬 감시를했다"며 "항일운동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집안이기울어 고향을 등지고 타지에서 50년을 살다 귀향했다"고 말했다.김씨는 "나라없는 백성이 되자 선열들은 자발적으로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며 "광복 50년을 맞아 흐트러진 민족정기를 되찾는 것이 선열들의 뜻을잇는 참된 길"이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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