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호칼럼-도의 현대적 상

까치집 그림으로 유명한 장욱진 화백이 통도사 뒷산을 헤매다가 고경봉대사를 만났다. 경봉스님이 누구시냐고 묻자 장화백은 "까치집 그리러 다니는사람입니다"고 대답했다. 물끄러미 쳐다보던 스님이 말했다. "중이 됐더라면도통을 했겠네요" 그러자 장화백이 말했다. "까치집 그리는데도 도가 있습니다"**선비도의 전형 숙연**

얼마전 광주 여행중 저녁 초대를 받아 전통적인 한 요정으로 갔다. 인간문화재 명창 한분이 나와 흥부가와 춘향가를 부르는데 가이 절창이었다. 요정주인이 고수역할을 하는데 북을 치다가 방석을 찾으니 누군가가 얼른 갖고왔다. 자신이 깔고 앉는가 보다했는데 북밑에 깔아준다. 다시 누군가가 방석을 갖다주니 역시 북밑에 깔아준다. 또 한장을 갖고오니 이번에는 밀쳐내버린다. 그리고 그대로 맨바닥에 단정히 앉아 북장단을 맞추는데 정신이 없다.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북치는데도 도가 있구나 생각했다. 노인명칭이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지않는가. 그는 맨바닥에 앉은것이 아니라 전통적 예도의 한자락을 깔고 앉은듯 했다.

일석 이희승선생을 자주만나 뵙곤한적이 있다. 서울 모처에서 일을 마치고떠나실때 택시를 잡아드려도 절대로 타지 않으셨다. 바쁘지도 않은데 낭비를하는것은 선비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할수없이 버스정거장으로모시고 가려하면 뿌리치고 혼자 가시곤 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따라가보면 버스 입구쪽에 그냥서서 안으로 들어가시는 법이 없다. 나중에 들은것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젊은 학생들이 자리를 비켜주는데 버스자리는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이 앉아서 가야한다는 것이다. 장차 나라를 짊어질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공부할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버스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는 것이 다리운동에도 좋다는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석학께서 오척단구의 몸으로 만원버스의 입구에 매달려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살아있는 선비도의 한 전형을 보는듯하여 숙연해진다. 도는 산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만원버스속에 매달려서도 가는 것이다.

**일에대한 자세 중요**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전기소설에 '예덕선생전'이 있다. 낮에는 거리의 오물을 거두어 근교 농가에 팔고 그 돈으로 양식을 사고 책을 사 밤에는 연구를 하는 인간상을 그린 것이다. 놀고 먹지 않으니 덕이요 거리청소가 되니덕이요 농업이 잘되게 하니 덕이요 밤에도 연구를 하니 덕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덕이란 말을 도라고 바꾸어도 좋다. 오물치우는 일 (예)에도 덕이 있고도가 있다는 말이다.

얼마전 한 맹인학생이대학시험에 합격하고도 돈이 없어 입학하지 못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자 거리 청소부 노인한분이 찾아와 입학금을 내놓고갔다. 이름이라도 알려주고 가시라고 해도 그저 담담히 웃으며 거리청소부라고만하고 갔다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선생이 이 기사를 보았더라면 또 한편의 '예덕선생전'을 남기지 않았을까.

대구거리 한자락에서 광고지를 열심히 돌리는이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광고지 한장 한장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너무나도 성실하게 신들린듯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어느듯 광고지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일에 대한 성실성 그 자체가 주목을 끌고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의뛰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문득 노동 그자체가 도라는 생각을 했다. 일을도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는 지금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아는 기업인 한분은 까치집같은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기업 이익의 반은 고아원에돌리고 반은 연구개발투자를 한다. 나는 그를 까치사장이라고 부른다. 기업을 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까치사장이다.

**소리없는 도의 실천**

서양에서 기독교의 도구적 인간관이 직업륜리로 세속화하면서 근대가 실현되었다. 한국에서도 산간의 도가 세간의 도로, 개인적 도가 사회경제적 도로전환하면서 개성적인 근현대가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경북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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