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이달의 문학-걸쭉한 야담으로 '그리움'형상화

'숨어서 피는 꽃'은 영천에서 능금농사를 짓는 이중기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중앙문단으로부터 청탁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방시인이 지방출판사에서 낸 시집인지라 대구의 가장 큰 서점에서도 살 수 없었다. 정보화시대에출판문화의 홍수 속에 살고 있건만 판매와 유통망에서 벗어난 책들은 책들의 산더미때문에 도리어 첩첩산중이다. 사실 시내 중심가 화원에서야생화를 사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더욱 향기롭다.우리의 서정시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이중기의 시는 걸쭉한 야담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그리움이 도드라진다. 그는 '수척한 그리움'이라고 연거푸말한다. 그리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울분과 고뇌, 슬픔과 탄식의 여운이다. 그것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표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오면 늘아쉬움이 남'고, '그리움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안타까움이냐'('상신리 사람들')는 성찰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리움에 '발목잡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은'꽃피고 열매 맺는 순명의 부드러움에 젖'기에는 젊음의 독기가 덜 빠진 탓일까. 어쩌면 '변방의 그늘', '세월의 그늘' 속을 지내온 그의 울분과 그리움은 이해됨직도 하다. 그러나 영천의 산골 상신리 사람들을 '지독한 그늘'에서 피는 꽃으로 그려낼 수 있는 그가 유독 변방에 대한의식으로 애달파하는 것은 혹 중앙에 편입되고자하는 욕망의 반영은 아닐까. 꽃의 참된 의미가 현세적 영광이나 외형적 미가 아니라 생명에 있다면,인간이 꽃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꽃이 숨어서 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꽃은결코 숨어서 피지 않는다. 꽃은 제자리에서 핀다.첫시집 '식민지 농민'에서 그는 통렬한 어조로 우리의 농촌현실을 증언하였다. 청춘의 편력을 마치고 귀향한 지 수년이 지난 그에게 이제 농업은나라의 중심이기 이전에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가 시인의 대열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상신리 주민을 그려내는 시인이 아니라스스로상신리주민이 되어 그의 시구대로 이 땅의 고지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할 때그는 이 시대 이 땅에서 짙은 그늘에서도 힘차게 필 '이중기화'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박원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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