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회 전국체전에서 경북이 3위에 오를수 있었던 데는 엄팔룡 이이재 등 노장선수들의 분발이 원동력이 됐다.41회대회를 끝으로 육상무대를 떠났던 엄팔룡은 경북체육회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일반부 110m허들에 나서 금메달을 차지, 왕년의 관록을 입증했다.현역시절 엄팔룡과 어깨를 겨루던 이이재도 400m허들과 멀리뛰기에 출전했다. 투척에는 송희원과 이달식이나섰고 단거리의 권대진 신학교 등도 경북팀을 위해 마지막 비지땀을 쏟았다.
이에 반해 퇴보해가던경북 학교육상의 당시 상황을 보여주듯 종목세분화로처음 열린 중등부에서는 성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고등부에서 안동사범의권영수가 400m허들과 800m에서 입상, 체면을 살렸다.
안동은 당시 경북지역 가운데 가장 육상열기가 높았던 곳.
특히 안동사범·경안고 등 고등학교간의 경쟁은 타시군에서는 엄두도 못낼만큼 치열했고 선수층도 두터웠다.
안동사범은 권영수를 비롯, 경북여자육상의 대표주자 송양자 등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고 경안고는 이태섭 등을 주축으로 한 투척종목에서 강세.또 안동여중에서 이후 경북여자육상을 한단계 발전시킨 금향순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는가 하면 경덕상고의 김차환은 5천m선수로 출발,전국체전 마라톤을 2연패하는 등 장거리의 맥을 이었다.
이처럼 자체적으로 육상의 발전을 거듭한 안동은 이듬해부터 열린 도민체전서도 단연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1963년부터 열린 도민체전은 경북육상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일부시군에서만 인기를 누리던 육상은 도민체전에서의 성적경쟁과 함께 시군의 지원강화, 선수발굴을 위한 저변확대 등으로 이어져 경북육상의 열기는새롭게 가열됐다.
안동의 여러 육상명문외에도 성주 선산 영주 등지에서 강팀들이 계속 생겨났고 여기서 배출된 선수들은 지역육상이 전국무대를 휘어잡는데 주역이 됐다.
특히 중등부의 영주대창중 문경여중 선산여중 등은 경북각지의 어린 선수들에게 스타의 산실로 각광받았다.
성주여고의 김몽순 최덕선(단거리) 대창고의 고태일(단거리) 고령농고의권중기(높이뛰기) 등 이들 학교출신의 전국무대 패자는 부지기수.이처럼 회복세에 접어든 경북육상은 전국체전무대에서 특히 상승세를 보였다.
경북각지에서 쏟아진 선수들은향토육상의 옛 명성을 조금씩 되살려 전주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체전에서는 남중부에서 김영강 임을룡 노동화 여중부에서 성윤옥 홍관순 정옥순 등이 각각 금,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특히 여중부 높이뛰기에 출전, 144cm를 넘어 우승한 성윤옥은 이후 고교때까지 높이뛰기부문 전국최강자로군림, 경북육상에서 빼놓을수 없는 소중한선수가 됐다.
제46회 전국체전 1만m경보에 참가, 2위에 입상한 배창룡도 경북으로서는더할나위없이 고마운 선수였다.
영남고를 거쳐 경희대를 졸업한 배창룡은 당시 경북의 유일한 경보선수로유명했다.
배창룡은 경기의 백광룡에 밀려 2위에 머무는게 대부분이었지만 그와 늘상각축을 벌이며 한국육상 경보의 기초를 다졌다.
1966년 8월 제47회 전국체전을 2개월 앞둔 경북육상팀은 경주 황성공원에서 2주동안 합숙훈련에 돌입했다.
경북팀은 송양자 등 일부 선수들이 전국최강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밖에는 기대를 걸만한 선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
그러나 뙤약볕 속에서 대규모선수단이 비지땀을 쏟으며 훈련한 덕분인지경북은 그해 전국체전에서 서울에 이어 2위를 차지,옛 명성을 되찾을 날이멀지 않음을 보여줬다.
여일반 100m,200m 2관왕 송양자 경보의 배창룡 등 기대주외에도 여중부의박순자(높이뛰기) 이영옥(멀리뛰기) 남고부의 김차환(5천m) 등이 우승의 감격을 누렸고 과거 우승을 놓치지 않았던4백m, 1천6백m계주에서도 1,2위를휩쓸었다.
이듬해 경북은 마침내전국체전 육상에서 종합우승의 영광을 차지했고 이후서울과 우승다툼을 계속,과거 명성을 완전히 회복했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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