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이문열 소설가 세종대교수)-전문가 시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의회민주주의의 꽃인 국회의원 선거를반년 남짓 앞두고 각당과 정파가 저마다 후회없는 일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정강정책의 개발과 새로운 인물의 영입이 그러하다.**정치계절의 '풍향'

그중에서도 새로운 인물의 영입은 주로 세대교체란 구호와 맞물려 젊고 유능한 신인을 찾아내는 일과 전문직종의 인재를 정계로 끌어내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기성세대가 보여주고 있는 정치의 난맥상에신물이 나있는 국민정서나 갈수록 세밀하게 분화되는 사회의 지식과 기능을통합조정하기 위해서는 일견 온당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각 정당이나 정파가 내세우는신인영입의 변은 겉만 번드레한 구실에 지나지 않음을 이내 알게 된다. 어찌된 셈인지 신인은 지명도 있는 운동권출신과 동의어가 되고 전문직 인재는주로 매스컴과 연관된 대중스타를 지칭하는 말이되어버렸다. 속되게 말해그들의 지명도로 유권자의 표나 따먹자는 의도가너무도 빤히 들여다 보인다.

학생운동이건 사회운동이건 그 리더는 틀림없이 정치지향적인 인물이고 조직과 통솔의 경험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한 틀림없이 제도권의 정치력으로 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운동경력이 바로 정치입문의 가장 효율적인 기반이 된다는 공식이 서게되는 것은 다음세대를 위해서도 경계해야될 일이다. 어떤 논리로든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에 합격하는 것보다 운동권,특히 체제도전적인 모험가로 뛰는게 더 빠른 정치적 출세를 보장하는 관행이형성되어서는 안된다.

**국회위상 추락 불보듯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어보이는 것은전문직종의 영입쪽이다. 인기깨나있는 탤런트나 얼굴깨나 팔린 아나운서면 이쪽 저쪽에서 쑤셔대고 가수며 연극배우들의 이름도 각 정당의 선량후보감으로 심심찮게 정치가십란에 오르내린다. 본업인 변호보다도 매스컴사회자로 더 알려진 변호사며 책같잖은 책몇권 우격다짐으로 팔아놓고 매스컴에 얼굴이 팔릴 수 있는 일이면 할짓 안할짓 다한 덕에 작가들도 몇 끼일 모양이다.

현대처럼 지식이 세분화되고 사회적 기능이 다양해진 시대에 전문지식인의의회참여는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하는 일이 드라마나 찍고 콘서트나 여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연예계 전문인들은 필요할 것같지않다. 의정이 뉴스보도가 아닌바에야 앵커도 지금 거론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많을 필요는 없고, 변호사나 작가도 마찬가지일 터이다.지난 추석 모방송의 특별 프로그램을 본 독자중에서는 우리 국회의 참담한위상을 본듯한 기분에 은근히 분개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코미디언 출신의 현역의원이 황금시간대의 텔레비전 화면에 나와 코미디를 하는 것은 아무리 국회의 권위를 부인한다 해도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런데 만약 다음 선거에서도 대중적인 지명도가 그대로 표와 연결된다면 우리는더욱 자주 그런 참담한 기분에 빠져야 할것이다.

좋은 배우가 있어야 할 것은 무대이고 좋은 가수가 있어야 할 곳 역시 그러하다. 좋은 아나운서나 앵커가 더욱 필요한 곳은 방송국이고, 좋은 변호사가 더욱 필요한 곳은 법정이며 좋은 작가가 필요한 곳은 글판이다.**유권자가 심판해야

만약 그들에게 '좋은'이란 수식어를 부칠 수 없다해도 우리가 표를 아까워해야할 이유는 그대로 살아남는다. 그때는 전문직의 인재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분야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인물에게 전문인의 지식과 기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정당이나 정파가 자제하지 못하고 눈앞의 의석수 확보에만 급급해 특정분야의 전문인들에게 공천을 남발한다면 유권자가 이를 걸러주어야 한다. 대중적인 인기가 곧 정치력으로 오인되는 사회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바가 없다.황제가 검투사의 인기를 질투하고 연극배우가 원정군사령관으로 선출될때 로마와 아테네는 아울러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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