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KGB와 나 (전부의장 보브코프 회고록)-(4)

**첩보원의 변절**어떤 나라든지 특수기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중 하나는 비밀지역으로의 침투활동과 요원의 모집이다.

이것은 결코 간단한 임무가 아니다. 그와같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선발된사람은 극도의 인내심과 강한 의지, 용기뿐 아니라 이에 관련한 직관력과 충분한 지식을 겸비해야 한다.

적지에서 활동하는 첩보요원은 어떠한 복잡한 정황속에서도 재빨리 상황을파악할 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적이 행할 수 있는 행동을 추측하여 대안을 계산할줄 알아야 하며 재빨리 응수방법을 고안해 낼 줄 알아야 한다.첩보원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나라의 역사,생태, 도덕 그리고 관습을 철저히연구해야 하고 기타 모든 세부사항도 숙지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뛰어난 기억력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스쳐지나간인물이나 나눈 얘기, 전화번호를 기억해야 한다. 넥타이 색깔이나 구두가 더러운지 아니었는지 자질구레한 사실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없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 한다. 눈이 서로 마주치면 얼굴을 기억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런 습관을 즐길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굳은 신념이 있는가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스파이라는 직업이 즐겁지 않다면 그는 스파이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세계 어느 첩보기관도 탐욕스런 인간을 원하지 않는다. 그에게 보다 많은돈을 준다면 그는 분명 배신할 것이다. 그런 예가 하나 있다.서방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곡물과 같은 중요한 '전략적' 생산물의 판매를거절하고 있었다. 답답한 우리는비교적 온건한 편인 캐나다와 회담을 추진했다. 회담은 성공적으로 시작됐다.

바로 그때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캐나다 스파이들이 행동에 착수했다.캐나다의 대중 매체들은 맹렬하게 반소비에트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으며자연히 순조롭게 이뤄지던 회담은 브레이크가 걸렸다. 커다란 기대를 걸고있던 곡물 구매계획은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와같은 도발적인 캠페인을 저지시키기 위해 소비에트는 긴급조치를 취할필요가 있었다. 최고 권력층과 국가안전기구도 이 일에 적극 개입했다.'해외납품연맹' 직원 알렉세이 보그다노비치 마르뜨이노프도 이때 몬트리올의 '엑스포 67' 전람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해외에서 일하는 모든 소련인은 KGB의 지휘를 받고 있었으며 그도 충실히 조국을 위해 일했다.그는 캐나다 바네트 댄슨 주식회사 회장이자 매력적인 인물인 제프리 윌리엄스와 자주 만나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 지방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노련한 사업가 윌리엄스는 마르뜨이노프에게 유익한 조언을 여러번 해 주는등 온갖 관심을 다 보였고 마르뜨이노프도 그에게 보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르뜨이노프는 그림을 잘 그렸다. 회의중 메모지에다 여러가지 소묘나 여자얼굴 모습을 스케치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번은 그가 완전한 풍경화를 한폭 그렸다. 옆에 앉아 있던 윌리엄스는 환호를 지르면서 그에게 한 장에 2만5천달러 줄테니크리스마스 카드를 한장그려달라고 했다. 마르뜨이노프는놀랐다. "이런 사소한 것에 그만한 돈을요? 나보다 이 방면에 훨씬 뛰어난직업화가도 기껏해야 수십달러 정도인데… 그런데 당신은 이 카드가 왜 필요합니까?" 윌리엄스는 "그 카드를 대량으로 인쇄해 러시아 사업가가 그린 것이라고 선전하면 어느 누가 그런 특이한 카드를 사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마르뜨이노프는 윌리엄스의 사업적 수완에 내심 크게 놀랐다. 그러나 "우리에겐 개인 사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런 광고는 나에게 해가 될수도 있습니다"라고 거절했다.

이 대답에서 윌리엄스는 마르뜨이노프가 돈을 벌고 싶지만 이것이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간파했다.

얼마후 그는 마르뜨이노프에게아주 사소한 상업적 서비스의 대가로 상당한 금액을 주었다. 그는 선선히 받아 챙겼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맛'을 알게된 것이다. 그는 풍족해졌고 가끔씩 그들의 사소한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거액의 달러가 들어왔다. 이로부터 비극이 잉태됐다. 본격적인캐나다 첩보기관 RSMP와 거래하게 된 것이다.

마르뜨이노프와 RSMP 의장인 단티몬의 만남은 몬트리올과 오타와를 오가는기차안에서 이뤄졌다. 단티몬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꺼냈다. "그래, 당신에겐 상품이 있고 나에겐 돈이 있소. 군사정보도 경제정보도 아니니 걱정 마시오. 단지 캐나다와 모스크바에 있는 당신의 직장 동료에 관해 얘기해 주시면 돼요. 그들의 습관, 취미, 장점과 약점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이오"마르뜨이노프는 "보수는 어느 정도요? 그리고 안전을 보장 받아야 겠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탁자위에 단가윈주식회사 사장 미하일 쥬바라는 이름의 명함을 내놓았다. "이것은 당신의 명함이고 당신 이름으로 된 여권도여기 있소. 그리고 이것을 읽어 보시오"

캐나다 법무부 장관 유런 올먼드의 국가 문장이 찍힌 서식지에는 그의 서명과 함께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 서류는 캐나다 망명자 관련 법률8-1에 의거하여 미하일 쥬바가 모든 심사를 거친 캐나다 시민임을 증명하는바이다. 동시에 캐나다 정부는 유사시 미하일 쥬바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줄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거액이 들어 있는 은행통장을 받았다. 대외무역 담당의 업무성격상그는 여러나라를 방문했고 거기서 캐나다 뿐 아니라 미국 첩보기관 대표자들과 만났으며 매번 후한 보상금을 받았다.

마르뜨이노프가 등장한 이후 캐나다의 반소비에트 캠페인은 중단됐고 캐나다와의 회담도 성공리에 종결됐다.

그러나 이 사건의 최고의 승자는 다름아닌 KGB였다.

우리는 마르뜨이노프가 미하일쥬바로 행동할때 이미 그의 반역행위를 첩보했다. 우리는 그가 모스크바로 왔을때 그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피묻은 담벽을 닦아내는 것이 일상이었던 비양카(KGB본부건물)에서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캐나다에서 벌어진 반소비에트 캠페인을 잠재운 것은 사실 마르뜨이노프였다. 그는 RSMP와 CIA가 공동으로 조작한 서류들을 착실히 우리에게 전해줬고이 서류들은 대서방 옐로카드로 사용했다.

캐나다 특수기관의 요원 몇몇을 파악하게 됐고 서류위조를 주도했던 국가기관의 거물급 인사들의 이름도 입수됐다. 그 속에는 당시 반소비에트 캠페인을 주도했던 2명의 국회의원, 톰 코시트와 오토 엘레니크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서방의 간교한 계략과 관련된 모든 서류를 그들에게 발송했다. 곧 반소비에트 캠페인은 중지됐다. RSMP와 CIA의 간교한 꾀가 제꾀에넘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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