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이문 칼럼-스포츠로서의 사냥

사냥 하면 몇개의 영화의 장면이나 그림들에서 볼수 있었던 유럽 귀족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사냥복에 엽총을 어깨에 메고 뒤를 따르는 귀여운 포인터를 거느리고 깊은 숲속에서 사냥하는 개똥모자 쓴 사냥꾼들의 모습은 멋있어 보였다. 사냥은 옛날 유럽귀족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며 그들만이 멋있어 보인것은아니다. 일제때 겨울이면 뒤를 졸졸 따르는 포인터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꿩이나 오리사냥을 하던 군수나 지방의 부자도 어린 마음에 무척 근사해보였다.

엄숙한 자연의 법칙

사냥은 과거 유럽 귀족이나 지방유지나 부자의 특권이 아니다. 사냥은 인류와더불어 시작됐다. 아득한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몽둥이.창.화살을 써서 큰 짐승을 사냥하며 살았다. 사냥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속에서 모든 동물은 항상 다같이 크고 작은 사냥꾼이며 동시에 사냥꾼에게 쫓기며살고 있다. 사냥은 잔인하다. 그러나 동물계에서 그것은 한 동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행위인 만큼 어쩔수 없이 따라야 할 자연의 엄숙한 법칙이다. 사냥에서 느끼는 숙연한 멋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냥은 멋있기에 앞서 역시 가혹하고 잔인하다. 사냥 하면 아무래도 나는 동물의 세계 가 보여주는 긴장감있는 동물들의 다양한 사냥장면을 생각하게 된다. 항상 수줍어보이는 산토끼, 우아하고 착한 모습의 가젤 사슴, 우직해보이는 누, 덩치만 큰 물소가, 하늘높이 떠서 망보는 유유한 매, 몸은 작지만 재빠른 치타, 늠름한 호랑이, 무서운 사자에 의해 쫓기다가 마침내 산채로 물어뜯기고 피를 흘리며 산채로 뜯어 먹히는 광경은 아무래도 비장하고 가혹하고 잔인하다.

정말로 천한 것은 인간

이런 사냥이 정당한가? 이에대한 대답은 사냥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자연의법칙을 반영하는 동물계의 사냥과 인간이 발명해 낸 스포츠로서 사냥은 똑같지않다. 동물들의 사냥이 어쩔수 없는 자연의 엄숙한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라면그런 사냥은 비극이긴 하지만 숙연하고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로서사냥의 경우 사정은 다르다. 오늘날 사냥은 인간에서만 볼 수 있는 스포츠로서의 사냥을 뜻하며 이러한 사냥은 정당하지 않다. 후자의 경우 사냥이 동반하는아픔, 잔인성 그리고 가혹성은 자연적이지 않고 도덕적으로 위배되는 악이다.

스포츠로서 사냥하면 나는 월남전쟁을 테마로 전쟁의 잔인성과 어리석음을 고발한 영화 사슴 사냥꾼 의 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큰 산맥의 한 아름다운 계곡 높은 바위에 혼자 우뚝 서 있는 사슴의 모습은한없이 우아하고 고귀하다. 그런데 어디선가 숨어서 쏜 엽총탄소리가 골짜기를울리는 순간 그 사슴은 피를 토하며 골짜기 밑으로 굴러떨어져 죽는다. 인간이재미로 하는 사슴사냥이 이 짐승의 피와 죽음을 뜻한다면 그러한 사냥은 인간속에 숨겨져 있는 잔인성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은 동물들을 천하게 여기고 경시한다. 그러나 정말 천한 것은 인간이 쏜 총알에 쓰러진 짐승이 아니라 오히려 총을 쏜 인간 자신이 아닌가 싶다.

입장바꿔 생각해봐야

깊은 숲에서 사슴이나 산돼지를 사냥하는 유럽의 귀족, 북극 흰 눈바닥에 곰을쏘아 피를 내게하는 것을 즐거운 스포츠로 삼는 현대의 갑부들 그리고 꿩과 오리를 사냥하던 옛날 시골군수나 지주들의 모습이 더이상 멋있어 보일 수 없다.이런 귀족들이야말로 도덕적으로 가장 천하고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정신적으로가장 가난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우리의 엽총에 조준된 한마리의 꿩, 오리, 기러기, 토끼, 산돼지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기전에 죄없는 그들의 아픔, 피 그리고 죽음을 단 한번만이라도 잠깐 상상해 보자. 우리는 우리가사냥하는 동물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스포츠로서의 사냥은 인간으로 가장 수치스러운 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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