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이란 동네가 있다. 대구에서 불과 20여㎞밖에 있고 지금은 4차선안동행 국도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서쪽으로는 탁트인 중앙 고속도로, 그 사이에는 다부동 전쟁기념관이 있고 뜰에는 시비 하나가 유원의 신록속에 말없이 서 있다. 경북 영양 출신으로 한국현대시단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청록파 시인 조지훈 시비인 것이다. 다부동 전투는 한국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중에 하나로 기록되며 그곳은 자유와 조국을 지켰던 마지막 보루로 알려져있다.
1950년 8월은 30년만의 가뭄이라 이글거리는 태양은 찌는듯한 불볕 더위를 만들었고 인민군 4개사단의 병력이 대구 점령을 위해 포화를 퍼부었고 국군은 불과 1개사단 병력으로 유학산과 가산을 배수의 진으로 삼고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다. 한달 가까이 피아간의 공방으로 낙동간은 피로물들고 다부동일대는 屍山血海가 되었다. 그 난리를 피해 동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마을로 돌아왔을때 두고 간 강아지가 먹을 것도 없었는데 송아지만하게 자라 있었고, 몇년이 지나자 유학산에서는 여름밤 소나기가 내릴때면 도깨비불이 번쩍거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다부원에서 라는 이 시에도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받아 움직이던 생령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이라고 했다. 다부동 전투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가를 짐작케 하는 것이다.
그때를 기억할 사람들은 반세기가 지나 잊고 살아가고, 전후 세대는 그때의 처절했던 전쟁을 체험하지 못해 모두가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백마디의 증언보다 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詩碑라도 하나 있어 다행스럽다.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者도 산 者도 함께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고 시인은 詠嘆했지만 이제 다부동전투에서 산화한 이들을 위해지난해 충혼비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옛 전쟁터에 시비를 마련했으니 다부동에 가서 그 시 한편을 읽으면서 호국 영령들을 위해 옷깃을 여미고 통일의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하게 기원해보는 것도 유월에 뜻이 있는 일이리라.
〈KBS 대구방송총국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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