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다시 공식지명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불굴의 노력과 인내력으로 극복하고 백악관 오벌 룸(대통령집무실)까지 차지한 의지의 인물.클린턴대통령의 재선 출사표확정을 계기로 그의 불우한 어린시절이 다시 화제가 되고있다.클린턴 대통령의 원래 이름은 윌리엄 제퍼슨 브라이드 4세.
46년 8월 그가 태어난 후 몇달만에 아버지 브라이드 3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후 어머지 버지니아는 마취학을 공부하기 위해 빌(윌리엄)을 아칸소주 호프에 사는 친정부모에게 맡기고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갔다.
외할아버지 엘드리지 개시디는 제재소 경비원이었으며 때로 어린 외손자를 데리고 경비를 돌기도했는데 외할머니 에디드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을 받게 해야한다고 주장, 이때 알파벳과 이름쓰는 법, 숫자를 배웠다.
빌의 친조부모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흑인들을 상대로 조그만 식품점을 운영했으며 그들은 한때 가게에서 빌을 돌보기도 했다.
어머니 버지니아가 아칸소에 되돌아온 것은 빌이 4살 때. 그녀는 자동차세일즈맨 로저 클린턴과재혼했다. 그후 양아버지는 핫스프링으로 이사, 그곳에서 자동차부품가게를 했으며 클린턴의 이부(異父)동생 하나가 태어났다.
○…양아버지 로저는 알코올중독자로 성격이 사나웠다. 빌은 그가 4~5세때 양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고함을 치며 집안에서 총을 쏜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어린시절 벽에 뚫린 총탄구멍을 보며 지냈다.
10대가 돼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됐을 때 그는 가끔 양부의 집에 들렀는데 이는 어머니가 무사하게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빌은 자신이 마음고생을 많이 해 실제 나이 16세가 됐을 때 40세는 된 것 같았다고 술회한 적이있다.
그는 어린시절 성장기의 영향으로 가족이 집에 단란하게 모여살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간절히바라는 성격이 된 것 같다고 스스로 말했다고 한다.
빌이 14세가 됐을 때 그는 양아버지 로저와 다투다가 방문을 때려부수고는 이제 내가 당신보다더 크고 힘이 세다 고 소리쳤으며 그후로는 양아버지와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로저와 버지니아는 빌이 15세때 이혼했다가 다시 화해, 곧 바로 재결합했다.
빌은 그들의 재결합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결심을 했고 그후로는 그런대로 잘 지냈다.○…이렇게 불우한 환경에서도 빌은 꿋꿋이 자라 고교시절 밴드부에서 드럼을 쳤으며 색소폰을불기도 했고 재즈콤보의 멤버로 활동했다. 학급에서는 반장을 맡았다.
16세 때인 63년 여름에는 아칸소주 우수학생 대표로 뽑혀 워싱턴을 방문했는데 이때 백악관에서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빌은 그때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갖게 됐다고한다.
양부 로저 클린턴은 빌이 21세 때인 68년에 사망했고 버지니아는 또 재혼했으며 94년 1월6일 운명했다.
그는 인종주의를 극복, 시내의 흑인과 중남미계 주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힐러리는 실제 이민자들을 위한 어린이돌보기 봉사활동을 동료들과 함께 펴기도 했다.○…힐러리 집안은 자유주의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공화당 지지 가문으로 그녀는 64년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도왔으며 웨슬리 시절에는 청년공화당 의장이 됐다. 그후 60년대의 사회불안, 말콤 X와 마틴 루터 킹 암살사건, 반전(反戰) 폭력시위 등을 계기로 민주당으로 바꿔 68년 예비선거에서는 유진 매카시 후보 지지운동을 했다. 이때빌은 로버트 케네디를 지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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