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선레이스-김상현(8)

국민회의 김상현지도위의장에게는 흔한 영문 이니셜보다'후농'(後農)이란 호가 친숙하다. 유신 반대투쟁에 나섰다 투옥된 지난 72년 고은씨(시인)가"지금은 고생하지만 나중에 농사를 잘 지어 편히 살라"는 뜻으로 지어줬다는 이력이 있다. 그는 30년 정치역정의 마지막 '농사'를 대선도전으로 정했다.

대선보다 더 힘든 고비가 국민회의의 후보경선이다. 대선4수에 나선 김대중총재를 제치지 않으면본선에 나갈 수 없다. 우리 야당정치사에서 양김(김영삼김대중)에게 정면 도전해 살아남은 경우가없다. 그렇다면 그의 도전은 정치생명이 걸린 모험이자 일종의 도박인 셈이다.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이 장안의 화제가 된 지난 10월. 마이클잭슨의 주요행사장에는 어김없이김의장이 보였다. 환경운동단체인 국제그린크로스와 두사람의 인연때문이다. 그는 한국그린크로스상임의장을 맡고있다. 마이클 잭슨과 김의장이 아무래도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것은 그에게 '구시대정치인'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29세때인 지난 65년 서대문보궐선거로 6대국회에 진출한 뒤 5선의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그는 우리 정치사의 고비마다 명분있는 행동을 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 83년 민추협을만들었고 87년대선때 양김 단일화입장에 섰고 90년 3당통합에는 반대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밀실시대의 전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김의장은 이에 대해 "독재정권에 의해 17년간이나 공민권이 박탈되고 3차례 고문당하고 78차례나 연금을 당한 사람을 단지 오랫동안 정치를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구시대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고 항변한다.

그가 명분만 좇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민주당을 분당해 국민회의를 창당할 당시"다시 야권을분열시켜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반대하다가 참여했다. 그는 이에 대해"국민회의 참여는 내정치생애의 허점이다. 솔직히 국회의원 하기 위해 참여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지난 4. 11총선전에는 차기대선에서 킹메이커역할을 하겠다고 했다가 총선에서 참패하자 경선을 주장하며 말을 바꿨다.

돈문제에 대해서도 그가 겪은 구설은 적지않다. 정일권(丁一權)총리시절 지갑을 빼내 썼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으나 그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 94년 정치자금 수수문제로 궁지에 몰리자 그는 "나를 건드리면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언급은 김대통령과 노선을 함께 하던 13대 대선당시 김대통령의 정치자금 모금과정을 은근히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DJP연합이 무르익는등 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 야권 후보단일화 논의가무르익자 그는 내각제개헌을 매개로 한 자민련과의 대선공조에 반대한다며 비토목소리를 높인다. DJ의 안방인 목포에서도 독한 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과거야당은 적어도 소외계층, 힘이 약한 계층을 위해 정책을 생산하고 이를 실천해 가는 점에서그 색깔이 분명했고 정책의 일관성이 있었으나 지금의 야당은 정책의 일관성을 잃고 있으며 자기 정체성을 포기해 가고 있다"

과거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상대적으로 이제 그는 DJ에게 미운털이 박힐대로 박혔다.그러나 '밀실시대의 전형적인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그를 만나면 의외로 소탈하고 합리적인 성격과 인간미에 대뜸 빠져든다. 그가 지난 71년 대선 당시'40대기수론'을 내세운 김대중씨의 후보경선 신화에 숨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유진산으로부터'구상유취'(口尙乳臭)'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김상현은 밤새워 대의원들을 설득해'김대중신화'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똑같은 기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치는 드라마다. 드라마틱해야 한다.굿판이 열려야 한다"그가 제시하는 정권교체의 콘티는 이렇다. 'DJP연합의 집권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는 정통성과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자민련과의 연합은 이것이 결여돼 있다. 제1야당의 전당대회에서 DJ와 경쟁할 수 있는 사람이 경선드라마를 창출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대의원들은 당선가능한 후보를 뽑는다. 그때까지 모든 여론조사에서 DJ불가론이 확산된다면 더욱 좋다. '로 압축된다.

그가 가진 장점은 적지않다. 그는 명분있는 행동을 해온 합리적인 정치인인데다 남다른 친화력을 갖고 있다. 그와 1시간만 이야기를 하면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반하기도 한다. 그가 환경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환경보호협의회를 만들어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도 지난 75년이다. 환경과 생명을 위한 모임과 국회 환경포럼을 이끄는 등 환경문제에 대한 식견 또한 남 다르다.

그러나 지금 그의 경선도전이 성공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계보라고는 박정훈김원길 김종배의원밖에 없다. 당내외에서는 그의 시도가 사실은 DJ이후 홀로서기를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徐明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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