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중심가의 아르바트는 작고 오래된 거리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한'젊은 거리'이기도 하다. 아르바트에는 고서점과, 골동품 가게, 예술인들이 자주 들리는 카페들,초상화 그려주는 거리의 화가들과 무명 음악가들, 거리를 무대삼아 퍼포먼스(행위예술)를 보여주는 전위 예술가들의 모습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져 있다.
아르바트가 신세대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만 역시 문화의 주역은 젊은이들이다.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도전적인 아르바트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빅토르 최의 벽'이다. 숨막히는 공산체제에서 젊은이들의 울분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대변해준 한국계 록 가수 빅토르 최가 지난 9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하자, 러시아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우상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낙서로아르바트 거리의 벽 하나를 도배해 버렸다. 이 지저분한(?) 벽을 철거해버리려는 기성세대의 시도가 있었지만 젊은이들의 항의에 무산되었다.
문화와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는 무엇보다도 러시아 연극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유명한박탄코프 극장을 비롯 시모노프, 바실리 극장 등이 밀집해 있고 배우 회관이 있을뿐 아니라 연기자를 양성하는 슈킨 연극학교가 있다.
그리고 수많은 배우와 연출가를 탄생시킨 러시아국립연극원(기찌스)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 연극을 확립한 연출가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자신의 독창적인 시스템을 실험하고 발전시킨 곳이 바로이곳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이전의 연극은 단지 배우들이 차례대로 대사를 낭송하는 것에 불과했으며 진정한 20세기의 연극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이니 이곳이야 말로 현대 연극의 산실인 것이다.
연극원에는 소련 시절부터 사회주의권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과 유럽의 유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않았다. 무용 연습실에서 마주친 일본 유학생 아야 마루치씨(26.여)는 일본에서 전문 배우로 활동하다가 연기의 한계에 부딪히자 심리적 사실주의의 본고장인 이곳으로 유학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몇백대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연극원에 입학한 학생들은 연기전공(4년과정)과 연출전공(5년과정)등전공에 따라 지도교수(마스쩨르) 한 명과 몇 명의 조교수(뻬다고그)밑에 배정되어 엄격한 도제식수업을 받는다. 연기 전공의 경우 연기 뿐만 아니라 승마, 펜싱, 발레등 배우에게 필요한 기초소양을 빠짐없이 배운다는 것이다. 한국 유학생 중 가장 먼저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김원석씨(25.연출전공)는 "학생들 중에는 힘든 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아예 연극을 포기하거나 다른 연극 학교로전학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해 주었다.
이러한 전통과 분위기 때문에 예술적 성향이 보수적이고 지나치게 클래식에 치우치지 않을까하는의심이 들었지만, "기찌스는 마치 용광로 같아서 어떠한 전위적이고 자유로운 실험과 예술적 모험도 허용되고 이내 전통속으로 녹아든다"는 것이 3학년 셰블로코군(20.연기전공)의 설명이다.개방 이후 두드러진 변화는 학생들의 외도(外道)(?)가 잦아졌고, 학교측도 이를 모른체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전에는 재학생이나 졸업생들이 연극 무대외에 영화나 TV에 출연하는 것을 교수나학교당국에서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세대 학생들 중에는 눈치를 보지않고 심지어는 모델이나 대중가수 등으로 연예계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대다수 학생들의 꿈은 여전히 '무대'였다.
세계적으로 연극이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위축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변함없이 연극이 사랑받고있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문화 풍토가 이들의 무대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주고 있는 것인지도모른다.
대중 예술의 물결이 세계의 모든 문화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서도 연극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연극원 학생들의 진지한 표정과 몸짓에서 러시아 신세대들의 건강함을 읽을 수 있었다.〈모스크바.金起顯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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