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보사태-초특급 수사기밀 누출

'한보게이트'의 은밀한 제보자는 누구인가.

미 워터게이트 사건때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보자, 이른바 '깊은 목구멍(Deep Throat)'과 비슷한 성격의 뉴스원이 이번 '한보'파문에서 사건의 흐름을 좌지우지하고있다는 주장이 정·관가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관심은 검찰의 수사발표전에 한보수사의 초특급 기밀인 거물급 정치인들의 명단이 언론을통해 잇따라 노출되는 데는 '은밀한 제보자'가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에서 출발하고 있다.

더욱이 신한국당 김덕룡(金德龍) 홍인길(洪仁吉)의원과 박종웅(朴鍾雄)의원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현정부의 실세들이고, 특히 김의원은 여권의 대선예비주자중 한명이어서 제보자가 이 문제에 정통하다는 확신이 없을 경우 언론이 무턱대고 기사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 때문에 정치권은 지금 한보의혹사건에 누가 연루됐느냐에 못지않게 누가, 왜 'A급 수사상황'을 계속 흘리는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현재 이같은 제보가 △검찰 △청와대 △한보그룹 △여권의 유력한 대선예비주자측가운데 어느 한군데서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우선 정가주변에서는 이를 한보그룹측의 마지막 승부수로 파악하는 시각이 있다.정태수(鄭泰守)총회장이 개인 재산권 보전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고 있고, 정보근(鄭譜根)회장이몇몇 계열기업 회생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이같은 관측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특히 정총회장의 경우 수서사건과 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때도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살아남을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번에도 그같은 '승부수'를 던진게 아니냐는 시각이다.한마디로 한보그룹을 파산하게 만들면 정치권 전체의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출신의 K의원은 "내가 알기로는 한보쪽에서 의도적으로 흘리는게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청와대출신의 또다른 K의원도 "한보쪽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 많다"고 했고, 안기부 출신의 J의원도"지금 정치권에는 한보가 정보를 흘린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내부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이보다 우세하다. 아무래도 직접 수사를 맡고있는 검찰 관계자가 아니면 누가 수사 대상인지 정확하게 찍어내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정총회장의 검찰소환으로 한보그룹이 거의 와해된 상황에서 한보측에서 그렇게 체계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또 수사기법상 검찰이 수사중간과정을 일부 언론에 흘려 여론의 반응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수사발표 수위를 조정하기 위한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전직 고위관료를 지낸 민정계 C의원도 "검찰내부에 확실한 증거를 갖지 않고 언론이 그렇게 대서특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한보사건 수사의 보고채널은 중수부장과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 김대통령으로 이어져수사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검찰내부 유출설을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정총회장 심문에 참여하는 수사관계자는 총 6-7명에 불과해 만약 수사중간상황을 일부 언론에 흘렸을 경우 금방 제보자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검찰 외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도같은 맥락이다.

일부에서는 김대통령의 성역없는 사정의지에도 불구, 한보수사가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을 경계한검찰내 일부 소장파 인사가 초기단계의 수사내용을 미리 언론에 유출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함께 여권내 대선주자 중 한군데서 수사정보를 입수, 언론에 흘렸을 것이라는 막연한 소문도나돌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에 줄을 대고 있는 검찰등 사정당국의 내부관계자가 수사정보를 '보고'했으며, 이를접수한 대선주자측에서 대권구도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언론에 흘렸을 것이라는 얘기다.그런가 하면 야당은 청와대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권의원이 정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시인한뒤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이 성명에서 발표했듯 청와대가 야당을 떠보기 위해 정보를흘리고 있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이같은 야당주당을 일축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야당은 비리의혹에걸리기만 하면 청와대를 겨냥하는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공박하고 있다.

청와대는 오히려 언론에 의한 이른바 '마녀사냥식' 보도를 개탄하며 나름대로의 채널을 통해 언론제보자의 실체를 탐지토록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분위기를 비교적 잘 아는 여권 인사들은 "지금 김대통령의 단호한 의지에 비춰볼 때 그럴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쪽에 모아지고 있다.

검사 출신의 H의원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측의 의도가 엿보인다"며 정보의 유출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데 동조하면서도 홍·권의원과 김덕룡의원 관련 보도의 제보자가 달랐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사태에서 피해를 입지않기 위해 적대적인 성격의 세력이 언론에 파악된 정보를 흘림으로써서로 상대진영에 공격을 가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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