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가 심심찮게 봄을 알린다. 학생들이라면 곧 끝날 봄방학에 미련을 두고 소일하기보다는 신학기 맞이에 더 부산할 때다. 하루나 이틀, 입시 걱정따위 훌훌 털고 공부에 찌든 심신을 추스르며 가족들과 이른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 발길은 어느덧 서원(書院)으로 향한다.
서원은 조선중기이후 명현(名賢)을 제향(祭享)하고 인재를 육성키 위해 전국 곳곳에 세워졌던 사설 교육기관.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인 영남지역은 특히 유서깊은 서원들이 수려한 주변 풍광과더불어 도처에 산재, 영상매체를 끼고 자라난 신세대들에게 옛 선비의 고고한 정신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산 교육장'의 보고(寶庫)라 할만하다.
선현들을 제향하는 사우(祠宇)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書齋)를 국내 최초로 겸비한 곳은 '백운동 서원'으로도 불리는 소수(紹修)서원(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사적 155호). 널리 알려진 대로 4백50여년전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유교의 중흥자 안향을 추모하고 그의 학맥을 잇기 위해세운 곳이다.
액(額)은 간판을 뜻하는데 서원건립이후 명종이 퇴계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간판을 하사함으로써 사액(賜額)서원의 효시가 됐다.
청소년에게 충효와 예의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지난 93년 충효교육관이 서원옆에 건립돼 매년 여름(1주일 단위).겨울방학(2~3일 단기)중 유교문화와 전통윤리의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함께개관한 사료전시관에는 국보인 안향선생 영정등의 문화재와 고서적들도 전시돼있다.충효교육관의 박석홍 학예연구원(44)은 "방학기간이면 하루 평균 2백~3백여명의 관람객이 서원을찾는다"며 "충효교육관은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예절교육도 병행실시하고 있다"고전한다.
또 아직은 부지매입단계에 있지만 오는 2001년까지는 유생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선비촌'과 국민교육장이 서원 주변에 조성될 계획이다.
사적 170호로 지정된 도산(陶山)서원(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은 지난해만 26만여명이 찾은 명소.성리학을 연구, 사단칠정론을 제기한 퇴계 이황이 유생들을 양성하고 학덕을 쌓던 곳으로 전교당(典敎堂)과 상덕사(尙德祠)가 보물로 지정돼있는데다 하회민속마을과 연계,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끊이지않는다.
유교사상과 미풍양속의 교육장으로 알려진 이곳에도 지난해부터 안동 향교와는 별도로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충효교실'을 8월중 운영하고 있으나 2백여명에 이르는 수강생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줄고 있는 추세.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직원 김준규씨(37)는 "서원의 충효.예절교육이 아직 대중적으로 활성화되지못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 학부모들이 입시준비를 앞세워 학생들을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전통문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 자체가 크게 부족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매년 10월 전교당에서 도산별과(別科)가 개최되고 있으며 서원 주차장내에는 퇴계 이황의 유품을응용해 만든 기념품 판매장인 '경'이 지난 94년 문을 열어 눈길을 끌고 있다.
조선 선조때 지방유림들이 회재(晦齋) 이언적을 향사키 위해 세운 옥산(玉山)서원(경주시 안강읍옥산리)도 가볼만한 서원이다. 서원내에 삼국사기 옥산본등 주요 문헌들이 다수 소장돼 있으며 서원 북쪽 5백m 지점 자옥산 기슭에는 회재가 학문에 정진하던 독락당(獨樂堂)과 계정(溪亭)이 있어 학문에 정진하던 선현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다.
이밖에도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영천시 임고면 보현산의 임고(臨皐)서원과 명필 한석봉의 건물 현판으로 유명한 성주군 수륜면 양정마을의 회연(檜淵)서원도 찾아볼만한 곳이다.
굳이 알려진 서원만 찾을 필요는 없다. 대구에도 북구 서변동의 서계(西溪)서원, 달서구 상인동낙동(洛東)서원등 18개소의 서원이 시내 도처에 세워져있어 우리 전통문화의 한 축을 구성하는유교문화의 뿌리를 더듬어볼 수 있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6백여개소에 이르던 서원이 47개소로 줄어든 지 1백30여년. 현판글씨 하나하나에 선현들의 옛 숨결과 지조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서원으로 한번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金辰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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