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남산-바위(하)

새록새록 돋는 봄. 싱그러운 쪽빛 하늘. 겨울잠에서 깨어난 남산은 봄하품을 연신 뱉어낸다. 골짜기마다 배낭을 멘 등산객들이 모여 울긋불긋 생기를 불어넣고 산기슭 농가마다 봄맞이가 한창이다.

남산바위를 뵙기위해 오르는 국사골. 동남산으로 길을 잡아 통일전을 거쳐 남산리 쌍탑이르기직전 귀퉁이 산길이 국사골어귀.

표지에 쓰인 남산부석 1.3km.

골 깊숙이 뜻밖의 정적이 흐르고 거친 호흡이 턱밑까지 차오를 무렵 초가집채만한 굴이 보인다. 이름하여 굴바위. 높이 2.6m 길이 6m. 굴안에는 2~3평 남짓한 평평한 자리가 있어 이내 드러눕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선승(禪僧)이 수도하던 고행처였을까, 반달곰이 새끼를 키우던 보금자리였을까.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장마철. 불공을 드리려 남산에 올랐던 신라시대 선남선녀가 황망히 장대비를 피해 찾아들다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을 엮었음직한 절묘한 공간. 그러나 모두가 부질없는 상념일뿐 지금은 무녀들의 수행처로 가끔 이용되고있을 뿐이다.

굴바위 두갈래길에서 남쪽 계곡으로 길을 잡아 쉬엄쉬엄 정상을 향해 오르면 맑고 고운 하늘을배경으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부석(浮石). 팍팍한 고갯길을 30여분 올랐을까. 긴 숨을 몰아쉬고 옆으로 힐끔 곁눈질하다 놀란 토끼처럼 눈이 희둥그래해진다. 억하는 탄성도 뒤따른다.장대하게 펼쳐진 기암괴석군(群). 갖가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얼기설기모여 웅장한 남산교향곡을 연주한다. 온갖 바위들이 여래와 보살의 모습으로 부석을 중심으로 시중을 들듯 자리잡고있다.

부석의 가장 잘생긴 모습을 보려면 부석에서 1백m가량 거리에 있는 탁자바위가 제격이다. 평평한탁자처럼 생긴 탁자바위에 걸터앉아 부석을 보노라면 자연속에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왜소한것인가를 또다시 깨닫는다.

공중에 떠있는 바위처럼 보인다해서 이름붙여진 부석.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큰 바위얼굴을 연상시킨다. 부석 바로앞 닮은 꼴의 바위가 또하나 있다. '새끼부석'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앙증스런 모습이다.

부석뒤로 다가서 조심스레 발을 짚고 바위앞에 가면 서넛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진다. 명상을 즐길법한 명당자리다.

부석뒤편 오솔길은 엉망이 돼버렸다. 최근 몰아닥친 화마가 이곳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시꺼먼숲. 마마자국처럼 남산의 흉터가 되어버린 이숲을 보기가 영 안쓰럽다.

정상 옆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2백여m가량을 걸었을까. 애달픈 사연의 상사바위가 국사골 남쪽계곡 정상에 자리잡고있다. 손녀같은 동네처녀를 짝사랑했던 할아버지가 사모의 정을 끊지 못해 나무에 목을 매고 끝내 자살을 하고말았다.

이후 원인모를 병에 시달려온 처녀가 꿈속에 나타난 노인을 통해 사실을 알고 괴로움끝에 바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으니 그 자리가 현재의 상사바위. 그 사연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위 하단부분에는 붉은 핏자국이 선연하게 남아있다. 이 곳을 지나던 50대 중년의 여성등산객들이 무심코한마디 뱉었다.

"그 할배 짝사랑도 참 주책 바가지다"

다시 길을 돌려 상선암을 향해 발자국을 옮기면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는 정상능선. 금오산정상에서 산아래로 빼곡히 들어찬 바위풍경이 수더분스럽다. 20여분을 걸어가면 또 하나의 상사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두개의 상사바위를 구분하기위해 이곳 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고있다.

바위아래에 가로 1.4m 높이 56cm 크기의 직사각형 감실이 있고 그 아래 머리없는 불상. 사랑에병든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돌을 던져 절벽사이 올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또이바위에는 감실 옆쪽과 위쪽에 남근바위와 여근바위가 자리잡아 아기를 낳기위해 소원을 비는사람들이 찾기도하는 곳이다.

남산 곳곳에 지천으로 널린 바위에 서린 전설들은 초저녁 베갯머리에서 무서움을 참고 들었던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듣고 또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우리의 동화들이다.

〈柳承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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