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짓말해도 개나리는 핀다

봄골짜기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진다. 자연의 보이지 않는 생명력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잎으로 때로는 바람과 비로 생명의 신비와 순리를 드러내 보인다. 단 한번도 꽃이 피지않는 봄을 보여준 적이 없는 자연은, 그래서 위대하고 정직하다. 그러한 정직 함이 그나마 세상일에 속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을 희망과 믿음으로 적셔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봄꽃과 남녘바람을 사랑해 왔다. 그러나 이좋은 봄날, 우리는 지금 한보 청문회라는 거짓투성이의 궤변과 '집단 위선' 이 뒤엉킨 한판 마당극을 구경하느라 봄꽃을 즐길 여유마저 빼 앗기고 있다.

누가 대본을 쓰고 누가 무대연출을 감독하는지 막(幕)뒤의 몸통은 그림자도 안보이고 날마다 바 뀌어 나오는 배우들의 입끝만 쳐다보며 울화가 치밀다가 주먹을 쥐다가 헛웃음을 웃다가 한다. 그런 기묘한 마당극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스무이틀을 계속 관람하며 이 봄을 다 보낼 판이다. 절대다수 국민이 첫날부터 '거짓말'로 믿어버리게 된 청문회라면 핵심이 이거냐 저거냐를 떠나 이미 그것은 더이상 청문회가 아니다.

법에 의해 공개된 청문회장에서 조차 겁없이 간 큰 거짓말을 할수 있고 그것이 통용되는 나라, 그 거짓을 밝혀내는 쪽에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더 많이 드러나고 있는 나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실이 거짓을 이겨내지 못하고 묻혀 버린다고 의심받는 그런 나라라면 희망을 상실해 가는 나라다.

청문회에 불려나온 사람들,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검찰에 불려나온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한 결같이 "억울하다"는 비탄과 "결백하다"는 비감한 탄식의 표정을 내보이고 있다. 병든 몸임을 강 조하는 듯 약을 꺼내 먹는 수심(愁心)어린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진실이 없는 인간일수록 억 지로 지어 보인듯한 수탄(愁嘆)의 모습을 보이고싶어 하는 법"이라고 한 세익스피어의 날카로운 심리분석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모습들이다.

한보 비리 캐내기에서 우리는 그러한 진실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인해 캐내는 소득보다 더 소 중한 것들을 더 많이 잃는 '밑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경륜과 지성과 관록, 그리고 나이 가 부끄러운 정계 중진들의 위선과 거짓이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철저히 배신하고 허 물어뜨리고 있는 것이 바로 잃고 있는 부분의 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보호하느라 이렇듯 수많 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야 하고 들어야 하느냐는 자괴감도 잃는 부분이다. 어딘가 숨어 있다고 믿고들 있는, 이른바 '몸체'의 실체를 밝혀 낼수 없고 또 스스로 드러낼 양심 도 기대할 수 없다면 청문회라는 위선적인 마당극은 가급적 빨리 막을 내려야 옳다. 소모적이며 국민의 온전한 정서와 윤리의식만 피멍들게 하는 부질없는 정치의 형식 놀음에 매달리고 있기엔 경제니 실업이니 나라의 상황이 너무도 긴박하다.

한마디만 묻고 싶다.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수는 있다. 또 몇사람을 늘 속일수도 있다. 그러 나 모든 사람을 늘 속일수는 없다" 는 링컨의 충고를 '몸체'여 듣고 있는가. 그대들이 지금 아무 리 거짓말을 해도 개나리는 피고 있듯이 그대들이 진실과 사실을 땅속에 묻어 버리려 해도 때가 되면 사실은 실체를 드러낸다. 가냘픈 봄꽃의 정직함에서 이 난국의 진정한 해법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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