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장엽씨 서울 오던 날

"옛제자 손 꼭 잡으며 눈가에 이슬"

◆…황장엽(黃長燁)씨 일행이 탄 에어 필리핀 소속 보잉 737 전세기가 20일 오전 11시35분께 서울공항 활주로 상공에 깔린 옅은 안개를 뚫고 왼쪽 하늘에서 항공등을 깜빡이며 희미하게 모습을드러내자 공항 청사 앞에서 기다리던 정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드디어 온다"며 일제히 탄성.황씨가 탑승한 특별기가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활주로에 안착하자 공항 청사 앞에 서있던 정부당국자들과 취재진은 비로소 안도의 표정을 지었고 지상 유도요원들과 방송 카메라 기자, 당국자등 30여명은 미리 활주로에 나가 여객기가 활주로를 돌아나올 때까지 숨죽이며 대기.유도임무를 맡은 전투기가 공항 상공을 선회하는 동안 여객기는 지상유도차량을 따라 10분여만에공항청사 앞 1백m 지점에 정확히 멈춰섰고 트랩이 연결되고 여객기 출입문이 열리면서 드디어황씨가 얼굴을 드러냈다.

한국군 장교와 필리핀 군당국의 리바르네스 준장의 안내를 받으며 여객기를 빠져나와 트랩에 선황씨와 김덕홍(金德弘) 여광무역 사장이 왼손에 중절모를 든 채 양팔을 번쩍 들어 '대한민국 만세'를 세차례 외치면서 숨막히던 착륙과정은 종료됐다.

◆…황씨는 비행기에서 내려 서울공항 청사에 마련된 임시 기자회견장까지 1백m를 걸어가는 동안 밝은 표정으로 이병기(李丙琪) 안기부 2차장과 대화를 나눴으며 흐트러짐 없는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다소 마른 체격의 황씨는 중국과 필리핀에 67일간 체류하면서 긴장된 나날을 보낸데다 필리핀에서 서울공항까지 3시간30여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왔으면서도 피로한 기색없이 취재진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목례를 건네 북한정권의 최고위직을 역임한 거물다운 면모를 보였다.◆…황씨는 임시 기자회견장에서 김일성대학 총장 재직시절 제자였던 현성일·최수봉, 최세웅·신영희씨 부부로부터 꽃다발을 건네받고 악수를 나누자 얼핏 눈자위가 흐려지며 감격을 감추지못하는 표정.

현씨가 먼저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황씨는 손을 굳게 잡으며 "성일이도 살아있었구나"라며 눈물을 글썽였고 이어 최세웅(崔世雄)씨가 "잘 오셨습니다. 건강하시죠"하며 인사할 때는 목이 메인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황씨는 도착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선 뒤 "간단히 인사말씀 올리겠습니다. 한마디로감개무량합니다"고 첫 마디를 떼면서도 제자들과의 감격적인 해후때문인지 다소 탁하고 떨리는음성이었다.

황씨는 제자들과 만나기에 앞서 평양상업학교 동창생인 유창순(劉彰順) 전국무총리, 전중윤(全仲潤) 이북5도민 회장, 임노춘(林魯春) 평상 동창회장 일행과도 인사를 나눴는데 맨 앞줄에선 유 전총리가 황씨의 손을 잡으며 "나야 나, 창순이. 평양상업학교 2회 졸업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황씨는 "반갑습니다. 선배님"이라며 답례.

◆…황씨와 김덕홍 여광무역 사장은 서울공항 청사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끝낸뒤 낮 12시12분께청사밖에 대기중이던 서울2크 8713호 검은색 그랜저와 서울 2즈 8568호 포텐샤 승용차에 각각 나눠타고 인근 안기부 청사까지 이동.

안기부는 경호상의 이유로 황씨 일행이 탄 승용차와 동종의 차량 5대를 앞뒤로 배치해 누가 어떤승용차에 탔는지 알 수 없게 하고 경찰특공대가 탑승한 소형버스를 뒤따르게 하는 등 신변보호에만전을 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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