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골… 철와골… 잠자는 수많은 유물" 장마철.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풍요한 비가 남산의 녹음을 더욱 푸르게 만든다. 생동감이 넘치는남산을 보면서 이번 여름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그저 넉넉한 비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산사태나 산불로 무너져가는 남산을 지켜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수많은 문화유적을 품에 안고 있는 남산. 하지만 천년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서인지 세속의 거친풍파에 없어지고 깨어지고 때로 흙속에 묻혀 옛 사람들의 정기와 손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 고금을 통틀어 남산에 세워졌던 1백여 사찰이 단적인 예. 옛 문헌을 더듬거나 와편에 새겨진 명문 등을 통해 이름이 확실하게 남아있는 절은 용장사, 천룡사 등 불과 3곳에 지나지 않는다.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는 수많은 유물유적들. 동강난채 잡목덩굴속에 버려져있거나 등산객의 우연한 발길에 채어 햇살 아래 파편이나마 드러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듯 남산의 문화재는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안고 있다.
남천너머 남산 인근에 자리잡은 국립경주박물관. 서라벌땅 곳곳에서 발굴된 10만여점의 신라문화재들이 비바람을 피해 안식하고 있는 곳이다. 많은 유물들 가운데 남산의 유물도 찬란한 역사의빛처럼 웅혼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본관 제2실 미술공예실 한켠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고있는 미륵삼존불(애기부처). 남산석불중 유일하게 의자에 걸터앉은 상(椅象)인 본존불은 장창골에서 발견돼 70여년전 이 곳으로 옮겨왔다. 비슷한 시기에 남간마을 민가에서 두 보살상이 발견됐는데 이 본존불과 같이 장창고갯마루(속칭 맨드리고개)에 있던 협시보살로 밝혀졌다. 한 주민이무심히 나뒹굴고 있는 두 보살상을 거두어 보관한 것일까. 그지없이 다정한 본존불과 두 보살상.조화미의 극치다. 따로 떨어져 있다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비로소 제 아름다움을 되찾은 것이다.동남산 가운데를 흘러내리는 철와골. 59년 사라호태풍때 묵은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고 한 유물이새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철와골 불두. 높이만도 1.5m가 넘는 큰 불상의 머리다. 버려진채 흙에묻히고 또 묻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숨어 있던 큰 부처가 다시 세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서라벌을 휩쓴 호우로 비록 옛 모습은 아니지만 다시 인간을 향해 돌아앉은 부처의 모습은 기백마저 당당하다. 눈썹 사이의 덩실한 백호(白毫)와 벌어질듯 긴장돼있는 입 표정에서 위엄이 느껴지는 이불두도 경주박물관 정원으로 옮겨져 있다.
용장계의 첫 지류인 법당골에서 발견된 약사여래좌불에 얽힌 일화는 애틋하기까지 하다. 지난 29년 머리가 떨어져 나간채 옛 경주박물관에 옮겨진 이 좌불은 화려한 대좌와 섬세한 광배로 한눈에 보통 솜씨가 아님을 알 수 있으나 머리와 광배일부가 없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67년 한 불상의 머리가 누군가의 손을 거쳐 박물관뜰 모과나무밑에 안치됐다. 마주보고 선 좌불과 불두. 두 조각으로 떨어진채 지척에 놓여 있어도 어느 누구도 한몸인줄 몰랐다.새 경주박물관으로 이전을 앞두고 뜰의 유물들을 점검하던중 좌불과 불두의 깨어진 목부분이 엇비슷해 불두를 약사여래좌불위에 올렸더니 꼭 들어맞은 것이다. 무심한 세월동안 따로 떨어져 있다 새롭게 맺어진 몸과 머리의 질긴 인연이다.
어디 이같은 사연들이 한둘뿐이랴. 어지러운 세월의 풍랑속에 잊혀지고 묻혀져온 불국정토. 한치의 어김없이 자연의 순리를 지키며 남산과 숱한 시간을 함께 해온 수많은 유물유적들이 다시 남산의 얼굴로 찬란한 빛을 낼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까.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