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주인공 송화(오정해 분)는 명창을 만들려는 의붓아비의 욕심에 눈을 잃는다. 심청가. 눈먼 아비를 위해 몸을 바친 딸의 노래를 연습하는 눈먼 딸과 아비. 득음 을위해 스스로 한을 쌓아가는 멀고도 험한 길을 보았다. 소리 가 크게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하다. 심청전은 있는데 심청가는, 그 소리는 도대체 어디에있는걸까.
12일 오후3시 남구 대명동 주운숙 판소리연구소. 꼼꼼하게 빗어넘긴 귀밑머리 아래로 제각기 이어폰을 꽂은 계집아이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다.
천행으로 이자식이 죽지않고 자라나서 제발로 걷거들랑 앞세우고 길을 물어 내무덤을 찾아와서아가 이 무덤이 너의 모친 분묘로다… 공부방 안에는 심청을 출산한 곽씨부인의 숨이 막 끊어지려는 찰나. 아직 앳되 보이는 정애(15)가 주운숙씨(44)와 마주앉았다.
내 무덤을 찾으으으 와서…
내 무덤을 찾으으 와서…
딱-! 다잡은 북채로 온각(세워놓은 북의 제일 윗부분)을 내리치는 선생의 표정이 추상같다. 거기서 다루(소리를 여러번 꺾는 것)를 더 쳐야제. 소리도 가성을 쓰지말고 통성으로 밀어 붙이고 심봉사의 절규가 이어질수록 정애 얼굴빛은 홍시가 돼간다. 목줄기에 핏줄이 바르르 떨리더니 우리 마누라 죽었는가 하는 대목에 와서 치맛자락을 불끈 쥐어봤지만 결국엔 목구멍이 콱- 잠기고말았다. 그렇게 곽씨부인의 숨이 붙었다 끊어지기를 몇차례. 그제서야 선생은 북채를 놓았다.판소리의 음은 음표 하나로는 도저히 표시할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하다. 소리란 놈은 속이 시커먼 물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다 하늘끝까지 치솟는다. 그냥 오르는 것도 아니고 뱀처럼 또아리를 튼다. 다루를 치고 북장단에 맞춰 밀고, 달고(당기고), 맺고, 풀기를 거듭한다. 소리의 그런성질때문에 여러명을 한꺼번에 가르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주씨가 내민 사설집에는 오선도없고 음표도 없다. 심청이 정신차려 아이고 아버지 천하 몹쓸 불효 여식은 아버지를 속였나이다가사위에 진양조, 자진모리, 중중모리 표시와 알 수 없는 ○, X만 잔뜩 그려져있다. 소리를 배우려면 오로지 북채를 잡고 마주앉은 선생님이 한마디씩 불러주는 것을 귀로 듣고 입으로 따라 외워야 한다. 소리꾼들의 고달픈 역사. 심청가처럼 완창하는데 6시간씩 걸리는 대작을 익히려면 각부분을 할 줄 아는 선생을 찾아 천하를 주유해야했다. 그래도 지금은 세월이 좋아 학생들은 선생님의 소리 를 녹음해 이어폰으로 듣고 있다. 아직도 심청가는 이 선생, 흥보가는 저 선생 하는식으로 배워야 하죠. 그래서 한 사람이 동편제와 서편제를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명덕초등학교 앞에 전주국악원 을 열어놓고 있는 김추자씨(57)도 그런 사람이다. 서편제로 출발한 그는 요즘 동편제로 판을 다시 짜고 있다.
서편제, 동편제의 차이가 뭐냐고요? 거참 어려운 질문인디, 소리의 맛이 틀린 거지요. 한번 들어보소
춘향가 한 대목을 펼친다. 서편제로 부를 때는 …춘향이가- 여짜오되- 하면서 소리 끝맺음이 흐느적흐느적하니 꼬리가 길게 달린다. 그 소리는 구슬프기도 하고 여성적이다. 반면에 동편제로부를 땐 끝을 앙다물어야 하고 그 소리가 왈대한 것이 남성적인 기상이 넘치지요 김씨는 동편제로 부를 때의 느낌을 소리를 뽑아 묶어 내던지는 것 이라고 표현한다. 동편제는 남성적이라 여성이 소리를 제대로 내기에는 조금 벅찬 감도 있습니다
원하는 소리를 갖기 위한 소리꾼들의 정성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폭포 소리를 이겨내는 수련방법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조급한 마음에 똥물을 먹으면 목이 트인다 는 속설에 혹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연습. 목에서 피를 토해야 득음한다는 속설도그만한 각오로 연습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하루만 연습을 게을리해도 소리에 땡감처럼 떫은 맛이 나지요
문제는 소리가 단지 쓴지 도대체 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마음 내킬 때 가서 판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도 없고, 또 듣고자 하는 사람도 없다. 배우지 않아도 몸에 밴 우리네 가락은 젖혀두고 뜻도 모르는 서양음악만 최고로 치는 이상한 풍조가 퍼져있다. 일고수 이명창도 옛말입니다. 관객이 있어야 판소리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이제는 일관객 이고수… 로 나가야 할 겁니다. 김추자씨의 걱정처럼 소리 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재산임에 틀림없다.어디 소리뿐인가. 오 예! , 와우- … TV에서 앞다퉈 퍼뜨린 외국 감탄사에 젖어있는 요즘 아이들은 얼씨구 으이 좋다 고 내뱉는 우리 추임새를 모르고 자란다. 감탄사도 배워야 하는 시대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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