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한 걱정스러운 것은 이 땅 아이들의 파리한 얼굴들 위로 덧 씌워질 깊은 그늘이다. 그들을볼 때마다 기성세대인 나는 자책감에 몸둘 바를 모르겠더러. 새벽에서 새벽까지 시달리는 그 전쟁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다시 무엇을 강요해야 하나. 시대가 난국이니 더 가열차게 공부에 매진하라고? 그렇게 해서 승리했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이제 저 아이들을 당신의 그 참혹한 욕망의 지옥으로부터 좀 풀어주면 안될까.
싱그럽게 피어나길 갈구하면서도 안타깝게 사그라드는 그들의 육체는 말한다. 우리는 정녕 이런식으로 죽어가고 싶지 않다고, 죽은 시인의 사회는 차라리 배부른 푸념이다. 시인이 죽어서 슬픈게 아니라 나날이 자신들이 죽어가야 하는 사회이어서 슬픈 것이다.
욕망의 지옥
'좀머씨 이야기'가 생각난다. 주인공 좀머씨는 현대 정신의학 용어로는 '밀실 공포증 환자'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쉴 새 없이 걸어다녀야만 한다. 특히 화자인 '내'가 아빠와 자동차로경마장을 갔다오다 그를 만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그때 좀머씨는갑작스런 악천후를 대비하지 못하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우박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함께 타고 가자는, 몇 번이고 거듭된 아빠의 제안에 그가 보였던 반응은 '제발 나를 그냥 놔둬 줘'라는 절규에가까운 외침이었다.
시간표, 규율, 상과 벌 등으로 짜여진 숨막힌 회로 같은 사회에서 어떤 영혼들은 견디지 못하고 '제발 놔둬달라'고 외치며 살아가야 한다. 그 외침조차 묵살될 때 더러는 좀머씨처럼 소리 없이 한점 꽃잎 지듯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
하이데거가 만년에 보여준 사상도 '있는 것을 있게 하라'는 한마디의 외침 안에 집약된다. 이것은'나뿐이 아닌 모든 것들을 제발 그냥 놔둬달라'는, 더 크게 확장된 좀머씨의 절규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꽃은 피게 하고 별은 빛나게 하고 강물은 흐르게 하라. 꺼지지 않는 빛으로 암탉에서알을 짜내고 식지 않는 열로 그 알에서 또 생명을 부화시켜내는 것, 화학비료로 도배된 땅에서 곡식을 키워내고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을 쪼여 과일의 출하 일자를 맞추는 것 등 존재에 가해지는 이 모든 폭력 앞에서 철학자는 복잡한 개념을 다 버리고 적나라한 음성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냥들 놔둬 제발. 그도 밀실 공포증 환자였던가.
사공은 왜이리 많은가
내친 김에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더 보태자. 남해의 황제 숙과 북해의 황제 홀 이 중앙의황제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그러자 혼돈이 극진히 두 손님을 대접했다. 환대 받은 숙과 홀은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가만히 보니 혼돈에게는 구멍이 없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일곱개의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선물로 혼돈에게 구멍을 내어 주기로 의논하고 하루에 한 개씩 뚫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일주일째 이제 편히 원하는 대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리라 믿었던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혼돈은 혼돈 방식의 리듬, 질서, 원칙이 있다. 왜 그걸 그냥 놔두지 못하는가. 그것은 틀린 것이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그런데 왠 선무당은 그렇게 많아 생사람 잡고, 무슨 사공들은 그렇게많아 배를 기어코 산으로 밀어 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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