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는 누가 막는 공간도 아닌데 관람객의 발길이 한풀 꺾여 차분함이 깃든곳이 있다. 고승이나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밭과 진신사리탑. 큰 절에서 멀찍이 떨어지거나 돌담장에 쌓여 알고 찾기전에는 닿는 발길이 드물다.
그래서 가장 절맛 나는 곳이다. 이곳은 어디에나 골고루 내리는 햇살이 더 밝고 따뜻하게 쏟아지는 듯 착각이 일고 득도의 평안과 침묵만이 흐르는 공간이다.
부도(浮屠)는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안치한 묘탑이다. 불교가 전래된 후 오랜 세월동안 건조되어왔고 승려 개개인마다 부도가 세워졌으므로 그 수도 매우 많다. 다양한 조각과 표면의 장식문양이석조미술품으로서 손색이 없다.
한국교원대 정영호 교수는 "도의선사 부도로 추정되는 전진사지 부도와 염거화상탑이 가장 오래된부도로 여겨진다"며 "신라·고려시대는 8각 원당형이 주류를 이루었고 조선시대는 석종형부도가많다"고 부도양식을 설명한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 뒷담의 사립문을 밀고 나가면 사방이 돌각담으로 막힌 부도밭이 있다. 큰 절에서 멀찍이 떨어져 숨은 듯 돌담장에 감싸여 있다. 여기에 줄이나 간격에 얽매이지 않고 되는 대로 흩어져 있는 11점의 부도, 3점의 비석은 마냥 천연덕스럽다. 원진국사 부도의 영향일까, 몸돌이길쭉길쭉하다는 특색외에는 규모나 솜씨가 대수로울 것 없는 조선후기 부도들이지만 이들이 지어내는 분위기는 편안하고 여유롭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조금씩은 삐딱하게 서 있는 자세가오히려 부담을 덜어주고 엷게 덮인 회록 빛 이끼는 인위의 냄새를 지워버리며 이들을 자연의 일부로 되돌린다.
담장 밖으로는 길게 자란 적송·느티나무·참나무들이 성근 숲을 이루어 부도밭을 그의 품으로 거두어 들이고 돌들은 깎이고 파이고 잘린 채 지금의 처지를 묵묵히 견디며 비바람과 함께 햇빛속에몸을 누이고 있다.
현풍~창원간 국도변에서 비슬산쪽으로 3㎞ 남짓 굽이진 아스팔트길을 오르다 보면 유가사(瑜伽寺)가 나온다. 유가사는 비슬산 천왕봉 아래 자리잡은 신라 밀교의 본찰로 범어 요가(yoga)에서 이름땄다.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며 수도하는 아름다운 곳, 선경(仙境)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이 절에서 서쪽으로 5백m 떨어진 비슬산 천왕봉 아래 양지바른 곳에는 스님들의 유해를 모신 석종형 부도 15기가 네모꼴로 정교하게 만든 기단위에 자리하고 있다.
생전에 겪은 갖은 번뇌와 득도를 향한 고통을 씻기려는 듯 천왕봉 한쪽 자락이 빙돌아 감싼 양지바르고 맞춤한 봉 밑에 크거니 작거니 열지어 해바라기 하고 있다. 사철 솔바람 들으며 한가롭게모셔져 호젓이 세월을 보내는 자태가 변신에 급급한 세인들을 나무라는 듯하다.모양은 대부분 비슷해서 네모진 두툼한 기단석위에 종모양의 몸돌이 놓인 형태다. 기단석과 종머리부분에 얇고 소박하게 연을 새긴 솜씨가 담백하여 오히려 정감이 간다. 가장 우람한 월호탑(187㎝, 90㎝)과 관월당 경수대사탑(185㎝, 94㎝), 어린아이 만한 노곡당 사옥대사(102㎝, 66㎝), 운곡당처명대사(98㎝, 67㎝) 부도 등 15기가 정겹게 서 있다.
비슬산 앞자락 옥포 용연사에도 화강암으로 된 고승들의 부도 7기가 있다. 뒤로는 수 백년 묵은적송과 거목들이 버티고 앞으로는 계곡이 휘돌아 흐르는 양지바른 곳에 소담하게 자리잡았다. 용연사 보궁에서 서쪽으로 3백m쯤 떨어진 곳에서도 부도 5기가 있다. 아직도 못다 이룬 업을 지우려는 듯 엄정한 자태로 도열해 있지만 가슴께 높이의 부도는 손길이 쉽게 갈 정도로 정겹다.용연사에는 특히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전(적멸보궁·보물 제539호)이 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가 인간세계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적멸의 세계에 들어가서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는곳.
조선 현종 14년(1673년)에 조성된 석조계단(戒壇)은 잘 다듬어진 이중의 화강암으로 탑 받침을 만들고 석종형의 탑신을 놓았다. 전각안에는 부처님상을 따로 만들지 않고 불단만 있다. 불단 뒤로난 유리창을 통해 사리탑이 잘 보이게 꾸며놨다. 또 용연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는 대신 사리탑에사천왕상을 새겨 놓았다.
사찰 도처에 산재한 부도의 변함없는 자태는 물질과 이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선악의 업을 읽어보며 늘 자숙하고 반성토록 하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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