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내 마음속의 문화유산

우리 마음 속에는 과연 어떤 문화 유산이 자리잡고 있을까?

여인네의 애틋한 기다림이 깃든 돌각담, 감나무니 살구나무와 같은 과실나무로 가꾸는 시골 뜰,시골 장독대, 조상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논배미, 한적한 산길에 비켜선 비석, 삶의 용기를 주는전래 이야기들, 봉은사 선각 처마에 걸린 추사의 판전, 조선백자, 한글, 가야금 산조, 석굴암, '나비야 청산 가자'라는 시조를 쓴 시인, 풍물과 탈놀이, 강강술래 그리고 산꼭대기의 손바닥만한 공간에 온갖 살림살이를 다 갖추고 사는 달동네의 공간 활용 지혜….

'문화 유산의 해'를 결산하면서 지난 해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내 마음 속의 문화유산'이란 제목을 내걸고 여러 날 동안 특집으로 마련한 자리에 사회 각계 각층 인사들이 소개한 내용들이다. 뜻밖에도 우리 생활과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우리 마음을 손짓해 부르고 있는 것들이 많다. 이름난문화재만이 아닌,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찾아내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내놓은 몇몇 필자들의 참신한 시각이 퍽 인상적이다.

우리 삶의 무대에 배치되어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는 한, 그리고 그런 것에 한두마디 특별한 설명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이 전통이고 역사며 문화유산 이라는 안병욱 교수의 독특하고도 산뜻한 문화 유산관을 접하면서 굳이 거창하고 화려한 것들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잘못을 곧 깨닫게 된다.

특히 보통 사람들에게는 버리고만 싶었던 유산인 달동네의 골목길조차도 조상들의 공간 활용의미학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문화 유산화하자는 한 필자의 제안은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다.외래 문화의 범람으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잊기 쉬운 때에 우리 모두 후손에게 길이 물려 줄 '내마음 속의 문화유산'을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을 더욱 아름답고 귀하게 지켜가도록 힘쓰자. 이런 일은 흡사 봄날의 저 천리향과 같은 자존의 향기를 온 누리에 널리 퍼뜨리는 일이기에.

(이정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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