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YS 5년-국정운영

김영삼(金泳三)정부 5년이 24일 자정이면 막을 내린다. 집권초기 국민들의 뜨거운 기대속에 높은지지를 얻었지만 개혁 차질과 거듭된 시행착오로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라는 미증유의경제파국을 초래, 실패한 정권으로 냉대를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김대통령의 재임5년을 상.중. 하에 걸쳐 정리해 본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5년동안 청와대와 정부 각급 기관으로부터 모두 1만2천여회에 걸쳐 보고를받았고 국무회의를 비롯한 3백20회의 각종 회의를 주재했다.

특히 매주 금요일 오전10시 청와대본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수석별 소관분야 현안을 보고받았다. 줄곧 본관회의로 불리던 이 회의가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구분짓기 위해 수석보고회의로 명칭이 바뀌면서 회의모습이 TV뉴스에서 사라진 것은 최근 1년전부터다."대통령이 청와대비서들과 둘러앉아 회의하는 것도 뉴스거리가 됩니까. 국무회의도 아닌데 왜 TV에 자꾸 나오는지 이해가 안돼요. 그건 김대통령이 뭘 모르는 거죠"3공때 장관을 역임한 정계원로ㅂ씨(77)의 지적처럼 당시에도 자주 TV뉴스에 비치던 수석비서관회의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현안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도 아니다. 수석들이 차례로 보고하고 말미에 대통령이 열심히 하라고당부하거나 한마디 지시하는 게 고작이다. 한마디로 오만한 문민정부 국정운영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영삼정부는 집권초 권위주의 청산에 목말라 하는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화려하고 당당한 개혁퍼레이드를 전개했다.

김대통령은 취임직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공직자 재산공개와 공직자윤리법 제정, 청와대앞길 개방,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정리, 율곡사업 특감, 슬롯머신. 카지노 비리수사, 동화은행 비자금수사 등등 굵직한 개혁조치들을 단행했다. 국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은 강력한 개혁조치들은누구도 엄두를 못냈던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실시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졌고 전두환. 노태우두 전직대통령을 단죄한 역사 바로세우기에 이르러서는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 청와대 주변에서는'개혁'이 만나는 사람끼리 주고 받는 인사말이었을 정도로 개혁은 문민정부 최고의 존재가치이고심벌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개혁조치는 정권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대부분 중심축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평가받을 성과마저도 전체적인 실패속에 파묻혀 버렸다. 무엇보다 경험부족. 무계획성에서 비롯된 시행착오와 추진과정에서 갈팡질팡한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여론동향이나 상황변화 등 앞뒤를 재보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추진하면서 독선적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의퇴임을 앞두고 최근 청와대비서실이 내놓은 자체평가서에도 대통령의 결단에 지나치게 의존한 하향식 개혁이 내각과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여론수렴이 충분치 못했다고 실토한 대목이 있다.김대통령의 대표적 과오로 꼽히는'깜짝쇼'인사와 잦은 개각, 측근관리 실패외에도 파행적인 의견수렴 행태는 미숙한 국정운영의 표본이다.

김대통령은 정부부처 등 정상적인 채널보다 비선조직에 더 의존,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을 가능케한 것도 이런 스타일에서 비롯된다.

김대통령이 5년전 환호를 받으며 청와대에 입성할때 개인적으로 진솔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수천명의 명단을 챙겨 들어갔다는 것이 회자됐던 적이 있다. 당시 언제나 국민들의 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됐음은 물론이다.

결국 김대통령의 문민정부는 용두사미식으로 출발만 그럴듯 했을뿐 우쭐대다가 나라살림을 거덜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실패한 정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됐다. 〈吳起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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