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을 경계로 경북과 갈라선 충북은 위치상 한반도의 한복판이다. 충북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 괴산군은 그동안 이곳 사람들로부터 한복판의 한가운데로 불려왔다. 교통이 가장 나쁜 오지라는 속뜻을 알고나면 그동안 괴산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져 왔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이화령. 경북 문경군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을 이어주는 고개다. 현재 이화령밑으로 터널을 뚫는문경~수안보간 4차선 도로공사가 한창이라 소백산맥 양쪽 사람들의 애환을 지켜봐온 이화령도 전설속에 묻힐 날도 머지 않았다.
소백줄기가 코앞에 버티고 선 괴산군 연풍면 삼풍리. 닷새마다 연풍장이 선다. 막상 장터에 찾아들었지만 시끌벅적한 시골장터를 염두에 둔 탓에 장날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뻔했다. 3년전만해도 제법 북적거렸으나 이제는 썰렁하리만치 조용하다는게 주민들의 얘기. 꾸려온보따리를 풀어 전을 펴던 장사치들은 아예 충주에 터를 잡아 눌러 앉았고, 장날 맞춰 면나들이를하던 단골들도 이젠 그림자마저 보기 힘들다.
하지만 연풍장 30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터줏대감 박씨(51)는 오늘도 그 자리에 낫이랑 보삽이며호미, 쇠스랑, 지게까지 내놓고 녹슨 톱날을 세우며 손님과 흥정을 벌인다. "3개나 맡기는데 천원싸게하면 되지" "천원어치 깎으면 날이 제대로 설라나 모르겠네"
최근들어 박씨 손에 맡겨지는 톱은 하루 5개가 고작. IMF탓에 땔감을 만들려는 집들이 많아져그나마 형편이 낫다. "잘 나갈때는 하루 30개정도는 족히 됐지. 일감이 밀려 점심먹을 짬도 없을만큼 바빴구만. 늘 얼굴 맞대던 장꾼들도 하나둘씩 불귀의 객이 되고 차들이 늘면서 수시로 충주로 나서니까 장날이라는 말도 이젠 맞지 않아"
경남 함양이 고향인 박씨는 가까운 친척어른으로부터 칼을 갈고 톱날을 세우는 일을 배웠다. 스무살때부터 장도리를 잡았으니 그럭저럭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연풍장, 제원장, 중원장등 충북도내 각 장터를 돌아다니며 일감을 맡아 5남매를 모두 키웠다. 몇해전부터 주민들의 발이 뚝 끊겨이 짓도 해먹기 힘들다는 박씨는 일을 계속할까, 충주에 점포를 낼까 고심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지만 별로 신이 나지 않는 표정이다.
예로부터 담배, 고추농사가 전부였던 연풍면에 한우사육단지가 조성된 것은 80년대초의 일이다.15년이 지난 지금 집집마다 적게는 30두, 많게는 1백두 이상씩 한우를 키우고 있어 충북도내 대표적인 축산지역으로 손꼽힌다.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하지만 IMF사태로 축산농가들은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환율상승으로 사료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데 반해 소값은 거의 절반 가까이 떨어졌으니 소먹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고추농사를 짓다 20년 가까이 소를 먹이고 있다는 삼풍리 이덕순씨(66). 부지런히 소들을 돌보던이씨의 손길이 최근 들어 뜸해졌다. 사료먹이는 시간외엔 마을사람들과 노닥거리는 시간이 부쩍많아졌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도무지 계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같은 시세로는 축사세울때얻은 융자금 이자며 사료값, 약값 맞추기도 벅차다. 밭뙈기라도 가진 사람들은 땅을 팔아서라도이자를 갚아가지만 가진 땅도 없는 이씨는 속수무책이다.
"사료값이 45%나 올랐어. 그나마 구하지 못해 한달동안 애꿎은 소들만 굶어나갔지. 못먹어 살이부쩍 내린 소들을 보니 가슴이 미어질 정도였어. 지난달부터 사료공급에는 문제가 없지만 질이나빠 못쓰겠구만"
지난해 가을만 해도 25㎏ 사료 한포에 5천원 가던 것이 지금은 8천8백원. 반대로 소값은 ㎏당 6천5백원에서 3천7백원선으로 뚝 떨어졌다. 팔려니 마리당 30만~40만원씩 적자고 시세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소를 붙들고 있자니 기약마저 없다. 더욱이 살아있는 영물을 굶기지도 못해 가슴만답답하다.
이씨의 축사에는 16개월이 넘은 한우 열댓마리가 출하날만 기다리고 있다. 대략 14개월쯤되면 실어내지만 금도 맞지 않고 수요도 크게 줄어 벌써 몇달을 넘겼다. 한달에 농가당 출하 할당량은겨우 2마리. 이곳 소들은 대부분 서울로 팔려나간다. 충주나 괴산, 청주우시장에도 일부 나가지만충북도내에서는 다 소화하지 못해 대부분 타지로 실어낸다.
반면 지난해까지만해도 70만~80만원하던 송아지값은 최근 20만원가량 올라 축산농가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연풍면으로 입식돼 오는 송아지는 이화령을 넘어온다. 경북 예천 용궁이나 상주산.사람만 이화령을 넘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송아지는 안 들여올 수는 없어. 혹여 시세가 좋아질때를 대비하려면 들여와야지" 좀체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삼풍리 축산농가들의 굵은 주름살이 펴질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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