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은 숨가쁘게 내려오며 곳곳에 재를 뿌려 놓는다.
죽령 조령 이화령 추풍령…. 지역을 가두고 사람과 산물의 왕래를 막는 거대한 소백산맥 줄기에서 이러한 고개는 가느다란 숨통이었다.
"옛날에도 이렇게 넓고 큰 길이었나" 시원하게 트인 도로를 달리는 요즘 사람들은 재를 알지 못한다. 길가에 씌여진 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게 고갯길이구나"한다.
세월이 바뀌어 도로가 닦이고 철길이 놓였지만 소백산맥의 '고집센' 위세는 여전하다. 산 하나만넘으면 되는 짧은 거리지만 단일생활권으로 묶이는 것을 막고 있다. 말도 다르고 물도 다르고, 기르는 농작물도 차이가 난다.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동서로 가르고 있는 속리산 권역. 문경새재가 있지만 요즘도 이 두 지역은 '먼 이웃'이다. 그러나 4월부터 8월까지 이들 지역에 사람들의 내왕이 잦다. 담배농사철이기때문이다.
보슬비가 내리는 꿉꿉한 날. 대지가 촉촉이 젖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문경 농암면을 찾았다.전국의 면단위에서 이 만큼 담배 농사를 많이 짓는 곳이 없다. 농암면 10가구중 4가구는 담배농사를 짓고 있다. 242㏊, 73만평에 이른다. 이 날도 담배묘종 심느라 농암면 일대의 담뱃밭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담배란 놈이 보기 보다 민감해요. 특히 묘종심을때 물기를 먹으면 담뱃잎이 안좋아요" 농암에서가장 담배농사를 많이 짓는 신구철씨(64). 며칠째 띄엄띄엄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묘종심기가 늦어져 애를 태우다 오늘은 궂은 날씨지만 사람들을 이끌고 밭에 나왔다.
인부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인근 담배농가가 모두 한꺼번에 묘종심기에 들어가는 바람에 새벽 5시 승합차를 몰고 충청도 지역까지 가서 사람을 구해왔다.
그러다 보니 밭에는 충청도와 경상도 사투리가 뒤섞인다. "묘종 다 떨어졌는디""어데요, 저기 있잖능교""언제 갖다 놨어유""참 내, 아지매는 뭐 보고 카능교". 소백산맥 너머 충청도의 중원이나보은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암에는 황색종담배가 주종이다. 담뱃잎이 누런 것이 전라도에서 많이 재배하는 양건종과는 다르다.
특히 담배농사는 힘이 많이 든다. 파종에 묘종심기 복토 수확까지 손이 가는 것도 많지만 수확기가 가장 고생된다. "한 여름 담뱃골에 들어가면 말그대로 찜통입니다. 바람도 안 통하고, 햇볕을받아 담뱃잎은 뜨끈뜨끈하죠, 벌레는 달려들죠, 애를 먹습니다" 옆에 있던 아줌마는 "그러다 '담배멀미' 해봐요. 며칠간 반 죽어요"라고 거든다.
'담배멀미'는 수확을 할때 어지럽고 구토가 나는 증상이다. 흡사 처음 담배를 피울때 느끼는 어지럼증하고 비슷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괜찮은데 안 피우는 사람이 특히 심하다. 2~3일간 애를먹는다.
아침 7시부터 밭고랑에서 묘종을 심던 일손이 쉴 시간, 참 먹을 시간이다. 오늘은 솥을 걸어 칼국수를 끓였다. 시멘트 블록에 대충 걸어 놓은 솥을 열자 구수함 김이 확 올라온다. 식은 밥에 산나물, 김치가 곁들여져 군침이 절로 돈다.
요즘은 참을 식당에 시켜먹는 일이 많다. 농암읍에 있는 식당들도 이때가 한철이다. 수백그릇이밭으로 배달되곤 한다.
담배농사의 이점은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농암에선 8월 중순 담배를 수확하고는 곧바로배추를 심는다. 9월 10월이면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배추가 떨어질때 쯤이다.
"담배는 수리가 좋아야 돼요. 땅이 질면 담배가 싫다 그래요" 신구철씨는 담배를 자식대하듯 말한다. '성질이 고약해서''좋아서 잎이 팔랑팔랑···''상처라도 나면'등이 그가 한 말들이다.아버지때부터 담배농사를 지었다. 담배농사도 싫었지만 4형제가 다 담뱃골에 붙어 있을 수가 없어 한때는 "각중에 복장학원도 다니고", 건축일도 했다. 그러다 결국 농사로 되돌아왔다. "힘들지만 이만한 농사도 없어요. 판로도 일정하고, 때되어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쑥쑥 크는 것이 담배죠" 엽연초생산협동조합에서 농자재도 무상으로 대준다. 올해는 담배수매대금이 9% 인상됐다."이놈 덕에 7남매 다 키웠다"고 했다. 그래도 요즘은 벌크건조기(기계식건조기)에 기계화가 많이돼 일하기가 '거저 먹기'란다. 도시에서 힘들게 살 것 없이 촌으로 들어오면 좋다고 거듭 얘기한다. 고통스러워도 2~3천평 농사지으면 먹고 산다. 벌써 농암에서만 네가구가 돌아왔다.예순을 넘긴 나이지만 검게 탄 얼굴과 굵고 거친 손마디에 짙은 흙냄새가 배여 있다. 돌아서는취재진을 향해 "기자 양반, 도시에서 고생하지 말고 이쪽으로 들어와요·"라고 또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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