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주 임곡리와 보은 임곡리

경북 상주군 화남면 임곡리와 충북 보은군 마로면 임곡리.

폭이 채 2m도 되지 않은 도랑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충청도땅이 맞붙어 있다. 예로부터경상도, 충청도 사람이 한솥밥을 먹으며 더불어 살아온 같은 동네지만 행정구역상 엄연히다른 동네다. 한 동네에 2개 도와 면,리가 공존하고 있는 셈. 소백산맥 밑자락 산골동네, 임곡리.

20여년전 쌀로 빚은 밀주 단속이 심할때 경북지역 단속반이 나오면 밀주 항아리를 안고 도랑을 건너 충북쪽에 발만 디디면 단속반들은 그저 물끄러미 쳐다볼 정도였다는 희한한 사연도 전해온다. 노름을 하다가도 단속이 나오면 도랑너머로 재빨리 도망쳐 화를 면하기도 했다.

임곡리에는 이장이 두명이다. 경북쪽 이장인 전해웅씨(61)는 '행정구역만 나눠졌을 뿐 노인회관도 같이 사용하고, 동네잔치도 함께 연다'고 말했다. 지난달 10일에는 충북쪽 한팀, 경북쪽 세팀으로 동네 윷놀이 대항을 벌였다. 윷놀이가 끝난뒤 집집마다 비료 1포대씩 나눠주고,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우의를 다질 정도로 피붙이나 다름없다.

매년 정월 보름이면 이쪽 저쪽 사람들은 동네 앞 산꼭대기에 올라 한 해의 평온과 풍년농사를 비는 산신제를 지내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도 지낸다. 물론 소머리, 부침개, 막걸리 등 음식도 공동으로 준비한다. 이 때문에 동네를 잇는 자그마한 다리는 오가는 주민들의 발길로북적댄다.

'예전엔 양 지역간 서로 혼사를 맺는 일이 동네의 가장 큰 경사이자 관심거리였지' 경상도사람 장진복씨(68)의 얘기다. 경북과 충북의 결혼풍속이 조금씩 달라 준비하는 양 혼주들이유달리 세심한 신경을 기울였다.

동네에 다리를 놓거나 도로포장을 할때면 양 지역의 단합은 더욱 단단해진다. 상주시에 예산지원을 요청할때는 충북쪽 이장인 서문찬씨(61)가 경북쪽 이장인 전씨를 모셔 가고, 보은군을 찾을 때는 전씨가 서씨를 모셔가는 등 '공동작전'을 편다. 서씨와 전씨는 무인년 범띠동갑내기. 전씨는 상주군 화남면의 동갑계 모임은 물론 보은군 마로면 동갑내기 50여명과계모임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동갑계인 '무인계' 계원사이로 자주 술잔도 주고받고 농사일도 의논하는 등 둘도 없는 친구다.

임곡리는 일제때 행정구역상 둘로 나눠졌다는 설 등 여러 설이 들리지만 아무튼 조그만 동네가 50년 이상 두개 도로 양립돼 있다. 가구수는 경북쪽 40가구, 충북쪽 20여가구. 젊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50대 후반. 그만큼 젊은이가 드물다. 이장 전씨도 마을일을 도맡아 하는 열성외에 젊다는 이유때문에 이장일을 몇년째 하고 있다. 40년대만해도 양쪽 합해 1백60가구로 젊은이들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율무농사를 짓는 노부부가 대부분이다.

특히 상주 화남면의 경우 이농현상이 두드러져 기껏 남아있던 평온초교가 지난 3월로 폐교돼 학교라곤 아예 없다. 이로인해 화남면 학생들은 충북 보은군 마로면이나 상주 화서면으로 먼길을 가야 한다. 지난해 보은군 마로초교에 다니던 화남면 임곡리 초교생 2명마저 올해 건너편 마로면 임곡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제 화남면 임곡리에는 초등학생이 한 명도 없다. 화남면은 물론 인근 경북쪽에 학교가 없는데다 충북쪽 마로초교 학교버스가 임곡리까지 운행되기 때문이다. 현재 화남면 임곡리를 통틀어 유일한 학생인 중학 2년생 김인하군(15)은 멀리 화서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경북쪽 임곡리 주민들은 충청권에 인접한 바람에 충청도 말씨를 쓴다. 이곳 젊은이들은 대부분 보은이나 청주 등 충북쪽에 생활터전을 잡고 있다. 그러나 행정서류를 뗄때의 작은 불편외에는 2개도, 2개면 한 동네의 삶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행정지원이 다소 많은 충북쪽 임곡리 주택이 경북쪽보다 때깔있고 깔끔하다. 이처럼 양 지역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오고 비교가 쉬워 공무원들이 도로정비나 환경미화에 애를 먹고 있다.충북쪽 임곡리 김정필씨(56). 10여년동안 임곡리 일대 유물유적을 보존하고, 이 곳의 고대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동네 한 가운데에 연자비(硏子碑)를 세웠다. 골재채취나 광산개발로 임곡리 천고산의 자연환경과 고대 암각화가 훼손된 것을 꼬집기위함이다. 실제 지난 90년부터 시작된 광산개발로 임곡리 일대 산 곳곳이 벌건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동네 주민들도 당초 자연훼손과 소음, 분진 등을 이유로 광산개발을 반대했지만,개발논리에 밀렸다.

김씨는 임곡리 천고산 고원지대는 천혜의 요새로 단군의 은거지였다고 주장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국운을 비는 제천의식을 위해 '천제단'을 세운 대모산이 천고산 인근에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93년부터 천제단 제천제를 복원시켜 해마다 개천절에 행하고 있다. 김씨의 집뜰 '연구실' 한켠에는 역사서를 비롯 보은지역의 유물과 유적, 전통풍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파괴만 일삼고, 과거의 역사와 자연을 살피지 않는 현대문명이 안쓰럽다'고 그는 말했다.

소백산맥을 울타리로 충청도, 경상도 가리지않고 정답게 살아가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그러했듯 서로 어우러져 삶을 일궈가는 이들에게 임곡리는 평온한 터전이 되어주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